아름다운 자연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풍요를 만들어낸
땀의 역사도 잊지 말자

 

   
▲ 김해규 소장
평택인문연구소

얼마 전 군 입대를 하는 아들과 경상북도를 거쳐 동해안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의 첫 방문지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이었다. 풍기하면 떠오르는 것은 인삼과 소수서원이다. 근래에는 인삼보다 ‘인견’이 더 유명하다. 아들과 인견 매장에 들러 가족들 선물을 사고 곧장 소수서원으로 달렸다. 시골길을 한참 달리다가 눈에 띄는 안내판이 있어 멈췄다. 다름 아닌 ‘대한광복단 기념공원’. 기념공원은 야트막한 산 정상부를 활용해 기념관을 짓고, 전시관 답사를 모두 마치면 자연스럽게 산 정상의 기념탑과 조형물을 참배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기념관 내부전시도 ‘대한광복단’이라는 단체를 잘 모르는 사람까지도 독립운동사, 나아가 대한광복단의 역사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꾸몄다. 공원을 답사하며 참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름다운 자연에 힐링하고 숭고한 역사에 감동했다.

평택지역에도 많은 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시장님은 명품공원 10개가 목표라고 했다. 통복천과 안성천, 진위천, 국도 1호선에는 ‘도시숲’도 조성된다. 콘크리트구조물과 공장들로 답답했던 평택시에 조만간 녹색혁명이 불어올 전망이다. ‘명품공원’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대단하다. 필자가 보기에도 곳곳에 많은 고민과 노력이 담겼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아름다운 숲, 맑은 물, 적절한 쉼터가 힐링공간을 제공하지만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점이다.

먼저 팽성읍 내리공원을 보자. 내리는 조선후기 평택현 북면의 중심마을이었다. 공원이 자리한 염소골에는 수백 년 전 염정승이 살았고 200여 호의 마을이 번성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공원 입구는 내리 마을의 당산이다. 아직도 참나무 신목神木이 있고 그 아래에는 마을제를 중단하며 세운 ‘폐령비’도 있다. 마을 동쪽에는 ‘향교우물’ 같은 지명이 있어 옛 평택현의 읍치邑治였지 않았을까 추정되기도 한다. 내리 이웃마을 동창리는 평택현의 사창司倉이 있던 마을이다. 정월에는 소나무 신목神木에 제를 지냈고 대보름에는 성대한 줄다리기 축제를 거행했다. 하지만 내리공원에서는 이 같은 땅의 역사, 사람의 역사를 찾을 수 없다. 그저 팽성읍에 주둔한 미군들과 가족들, 팽성읍 주민들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편히 쉬었다 가라는 배려(?) 외에는 어떤 스토리와 감동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배다리생태공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배다리생태공원은 죽백동의 삼남대로 ‘배다리’에 조성된 공원이다. 저수지는 1944년경 만들어졌다. 삼남대로는 한양에서 충청, 전라, 경상도로 내려가는 가장 큰길이었다. 길가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절창이 남겨졌고, ‘춘향이 길’이라는 애칭에서 알다시피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지만 공원에는 이 같은 이야기가 거의 담겨 있지 않다. ‘배다리역사생태공원’이 되었어야 마땅했지만, 역사적 기억은 지워지고 ‘생태’만 남았다. 다만 담당공무원의 배려(?)로 산책로에 홍살문과 배 형태의 조형물이 만들어진 것이 전부다.

11월 8일 동삭동 ‘가칭 모산골생태공원’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개최됐다. 모산골공원지키기시민모임에서 개최한 ‘모산골 공원이야기’라는 자그마한 행사였다. 좀 쌀쌀한 늦가을 날씨 때문에 참가자는 적었지만, 내용과 의미만큼은 높이 살만했다. 모산골공원지키기시민모임은 바벨탑 같은 고층아파트가 지어질 공간에 생태공원을 조성하자며 노력해온 단체다. 이들의 노력으로 조만간 모산골저수지 일대에는 8만 평이 넘는 멋진 생태공원이 조성될 거라고 한다. 이 자리에 초대된 필자는 길과 사람들 이야기, 모산골과 저수지의 역사, 배 과수원과 서재마을 제당을 열거하며 땅의 역사, 사람의 역사의 소중함을 말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후손들에게까지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풍요를 만들어낸 땀의 역사도 잊지 말자고 강변했다. 그것이 ‘풍요로운 평택’이 아니라 ‘잘 사는 평택’, ‘근본 있는 평택’을 만드는 것 아니겠냐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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