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마음산책

 

   
▲ 박영선 사서
평택시립 배다리도서관

우리나라가 단일민족국가라는 것을 큰 자부심으로 배우며 자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화로 인해 더 이상 먼 나라 외국인이 아닌 가까운 이웃과 반 친구들, 회사동료와 거리의 인파속에서도 다양한 피부색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예전의 민족 이데올로기가 사회발전과 화합을 저해하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어 그런 편견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민자 문학이라고 하는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이 눈에 띄었다. 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미국인 작가다. 영국 런던의 벵골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하여 성장한 이력으로 그를 이민자문학이라 일컫기도 하지만 거주자문학이 없는 만큼 이민자문학이 따로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축복받은 집>은 9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은 아이를 사산한 부부 사이, 속한 국가는 다르지만 같은 말을 쓰는 지인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불륜관계의 연인 사이 등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 사이에는 서로 인지하지 못한 상처가 있고, 작가는 이들 사이에서, 독자와의 사이에서 ‘통역사’역할을 자처하였다. 또한, 각 작품은 특정 화자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지 않아서 건조해 보이지만 대화 사이에 예기치 않은 신랄함이 번뜩인다. 떠나온 사람과 정박한 사람 사이, 떠나온 사람과 떠나온 사람 사이, 정박한 사람과 정박한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저마다 남 얘기 하듯 그려지고, 그 안에서 어김없이 길들여진 사람과 낯선 사람의 만남을 보여 준다

‘질병 통역사’라는 단편에서는 남편의 자식이 아닌 아들을 숨기고 살아온 다스 부인이 유창한 영어 덕택에 병원을 찾는 환자의 증상을 의사에게 통역해 주는 역할을 하는 관광안내원 카파시에게 비밀을 고백하며 치료법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한 카파시는 호감을 보이는 다스 부인에 대한 애정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만 다스 부인의 고백에 당황하게 된다. 카파시가 줄 수 있는 치료법은 무엇일까? 

‘일시적인 문제’라는 단편에서는 아이를 사산한 아내의 상실감과 이를 지켜봐야하고 헤쳐 나갈 길을 찾으려는 쇼바와 슈쿠마의 대화가 가슴이 저려온다. “어둠 속에서 서로 얘기하기” “우리가 전에 얘기한 적이 없는 것들을 말하는 건 어떨까?”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이라는 단편에서는 어른들이 정해준 부부의 연에서 어떻게 감정의 교집합이 생기고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지, 인생은 우주비행사가 달에 착륙한 겨우 몇 시간의 굉장한 순간이 아닌 무척 평범한 삶이지만 연습이 없기에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는 주인공의 단언이 큰 울림을 준다. 

사색이 깊어지는 계절 무덤덤한 일상에서 관계의 소중함과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축복받은 집>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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