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인문학의
현주소는 회색이다

 

   
▲ 김해규 소장
평택인문연구소

인문학人文學이란, 사람에 관한 학문이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문文·사史·철哲’을 인문학의 근간으로 삼았다. 문학을 통해 사람의 마음과 정서를 읽고 역사를 통해 삶을 반추했으며, 철학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했다. 조선朝鮮은 인문학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였다. 사대부들은 철학자였고 역사학자였으며 문학가였다. 식민지교육의 영향으로 왜곡된 인식이 존재하지만, 실상 조선만큼 이상理想을 꿈꾸고 논리적論理的이며 효율성效率成을 추구했던 국가도 없었다.

1960~70년대 경제개발은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안겼다. “지하자원도 없는 국가에서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해야 잘 살 수 있다”는 정부의 개발논리에 노동자들은 여가를 꿈꾸지도 못하고 죽도록 일만 했다. 그 시절에는 인간다운 삶, 여가가 있는 삶은 비난받았다. 일은 하지 않고 놀 생각만 한다는 논리였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라는 노래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라는 가사가 퇴폐적이라고 금지곡이 됐다. 근면하게 공부해야 할 대학생들에게 퇴폐적 의식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행복을 위해 일하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죽도록 일했던 시절이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인문학人文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풍요로운 삶이 가져다준 공허를 물질만으로는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인간다우면서도 가치 있는 삶,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일한다는 자각, 경영학이나 공학, 의학으로 채울 수 없는 것들을 인문학으로 채울 수 있다는 반성의 결과다.

수원시는 2017년 ‘인문학도시 조성 조례’를 발표했다. 수원시를 삶이 있고 가치가 있는 품격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다. 수원시가 인문학도시 관련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다. 도서관과 박물관, 미술관을 두 배 이상 늘리고, 문화예술골목을 조성하면서 각종 인문학강좌와 인문학체험프로그램을 개최했다. 한 해 동안 수만 명이 인문학강좌를 들었고 수십만 명이 전시회나 공연을 관람했으며,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수원의 역사와 문학, 사상을 경험했다. 근래에는 인문학강좌와 재즈공연이 함께하는 인문학콘서트, 길거리인문학도 개최했다. 시민중심의 인문 활동가를 발굴했으며, 올해에는 사이버공간을 통한 근대인문기행, 토요수원 인문기행도 개최했다. 오늘날 수원이 살기 좋은 도시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이처럼 지자체의 인식전환과 시민들의 노력이 수반됐기 때문이다.

수원이 인문학 도시로 거듭나게 된 바탕에는 ‘지역학’이 있다. 경기문화재단의 경기학연구센터, 수원시정연구원의 수원학 연구와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을 통한 인적人的 인프라 구축, 수원시사편찬위원회의 활동을 통한 연구 성과 축적, 경기대학교 등 지역대학과의 연대를 통한 지역학 연구가 그것이다. 고유성에 기반을 둔 객관적인 지역연구는 독특하고 창의적이면서도 객관성을 잃지 않는 품격 있는 콘텐츠 계발로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수원시에서 생산하는 콘텐츠는 수원만의 고유성이 담겼다. 억지스럽지 않다. 쉽게 공감이 가고 재밌다. 시민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평택시 인문학의 현주소는 회색이다. 학술단체들이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분투 중이지만, 지자체는 인문학 발전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이나 체계적인 지원도 없다. 시급히 필요해 보이지 않는 보도블록 교체에는 발 빠르지만, 인문학 강좌를 개최한다거나 인문학도서를 편찬하는 일, <평택시사>를 제대로 편찬하는 일, 박물관을 건립하는 일, 문화재를 지정하는 일, 인문재단을 설립하는 일에는 한없이 느리다. 도시를 어떻게 인문적으로 색칠하고 풀뿌리 지역인문학을 발전시켜 시민들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복안도 보이지 않는다. 평택시가 수원시의 품격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를 성찰하자. 깨달아야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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