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이 목숨으로
지키고자 했던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

 

▲ 정수일 회장
평택3·1독립운동선양회

지금부터 102년 전인 1919년 3월 9일,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 계두봉과 옥녀봉 일대에서 경기 남부지역 최초의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다. 수원 이남지역 최초의 평택3·1독립만세운동은 안성, 화성, 천안 등 남한의 3대 만세운동 항쟁지보다 앞서 일어났다. 일제는 4월 1일 벌어진 ‘안성 원곡만세운동’와 4월 3일 벌어진 ‘수원 장안면과 우정면 만세운동’ 그리고 4월 1일 벌어진 ‘평택 평택역 앞 만세운동’를 거칠고 사납게 진행되었다는 뜻에서 ‘가장 광포狂暴한 것’으로 기록했다.

평택3·1독립만세운동은 각계각층에서 대규모로 전개돼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기록에 의하면 64명이 사망했고 127명이 부상당했으며, 257명이 체포됐다. 하지만, 나라를 되찾으려는 민중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제각기 날짜는 다르지만, 서부지역인 현덕면과 포승읍, 안중읍, 청북읍, 오성면은 물론, 남부지역인 평택역 일대, 팽성읍과 북부지역인 진위면, 서탄면, 고덕면, 지산동까지 평택 전 지역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월 1일의 독립만세운동이 우리 한민족 전체의 얼을 울렸다면, 그로부터 8일 후인 3월 9일 평택시 현덕면에서 일어났던 독립만세운동은 경기 중부·남부지역 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자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평택시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현덕면 권관리 일대에 평택3·1운동기념광장을 조성하고, 기념조형물을 건립하는 등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평택3·1운동 첫 만세운동 터’ 표석을 처음으로 세웠고, ‘평택3·1독립만세운동 봉기도’를 건립했으며, 시민들의 십시일반 모금을 통해 ‘평택3·1독립운동기념비’ ‘평택독립운동선열추모비’를 차례로 세웠다. 그것은 바로 당시의 조상들의 뜨거운 피와 희생이 아직도 후손들의 가슴에 면면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평택독립운동선열추모비’는 평택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벌이다 희생된 순국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기념비였다. 평택의 독립운동가들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로 인해 대통령장을 비롯해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건국포장 등 정부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았다. 우리 후손들은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길이 되새겨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위한 평택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평택독립운동선열추모비’는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주기 위해 시민들이 정성스럽게 마련한 기념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있을 수 없다.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는 엄격하고 냉혹한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이끌어갈 미래에는 선조들이 겪었던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평택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격렬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곳 평택에 사는 우리 후손들은 그런 위대한 선조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분들이 목숨으로 지키고자 했던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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