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만큼은
하늘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자

 

 
▲ 김해규 소장
평택인문연구소

공자는 예禮를 갖추려면 네 가지를 경계하라고 했다. 억지 부리는 것, 기필하는 것, 고집부리는 것, 아집에 사로잡힌 것이 그것이다. 위의 원칙들은 사람이 품격 있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다. 동물과 차별성을 가진 존재로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어린이날을 앞에 두고 전전긍긍하며, 성년이 된 자녀들은 어버이날을 앞에 두고 무엇을 선물하면 예禮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부모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스승의 날에는 자신을 가르치고 이끌어준 은사님들을 기억하며 어떻게 예禮를 갖추고 감사함을 표할까 고민한다. 그래서 5월은 부담스럽다. 주는 사람도 부담스럽고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운 계절이다. 하지만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을 모두 없애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좀처럼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기 힘든 우리의 일상에서 절기마저 없다면 그나마 감사할 마음조차 사라질까 두렵다.

내 아버지는 2년 전 세상을 떴다. 무려 10년을 병석에 누워 지냈고 90세를 넘겼으니 후련하기도 하려만 아직도 맛난 것 좋은 것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대한제국시기 의병투쟁을 했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내내 충청도, 전라도 일대를 떠돌며 살았다. 호적도 없었고 뿌리도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으며, 동네 근처 야학을 다니며 겨우 까막눈을 면했다. 고기잡이가 끝나는 늦가을에는 이웃마을 부잣집의 가을걷이와 탈곡을 도와주고는 식량을 얻어 가족을 부양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혹여 학교에서 돌아올 때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손목을 잡을까 두렵기조차 했다. 그랬던 아버지에게 ‘감사感謝’의 마음을 품게 된 것은 역사를 공부하면서부터다. 아버지 시대를 이해하고 두 자녀의 부모가 된 뒤에서야 비로소 사랑의 깊이를 깨달았다. 일 년 내내 양복 한 번 입지 못했던 아버지, 무학無學이었던 아버지, 고기잡이로 거칠고 투박했던 아버지의 손길이 그리워졌다.

결혼 후 4년이 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다. 7남매의 장남인 데다 당시로써는 늦은 나이에 결혼했는데 아이마저 생기지 않으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간혹 고향에 갈 때 부모님과 이웃들이 툭툭 던지는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유명한 불임클리닉의 도움도 받았지만, 소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결혼 5년 차에 아이를 얻었다. 느닷없이 다가온 하늘의 축복에 무한한 감사가 솟구쳤다. 몇 년 뒤에는 둘째도 태어났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무한감사가 육아의 고통을 잊게 했다. 지금도 성년이 된 아이들을 볼 때면 가끔 가슴이 뭉클하다. 우리에게 축복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예禮는 감사感謝에서 우러나온다. 공자나 부처가 말했듯이 감사感謝는 이기적 욕망, 아집과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 나온다. 마음에도 없는 도리를 지킬 때가 아니라 부모의 삶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고 그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릴 때 발현된다. 자녀가 소유물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준 축복임을 깨달았을 때도 감사가 우러나온다. 부모자식은 끊을 수 없는 인연의 실타래 속에 엮여 있다. 평소에 잊고 살았다 할지라도 가정의 달 5월만큼은 하늘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자. 그것에 감사感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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