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대에
조심스러운 정치인은
우리에게 절실하다

 

   
▲ 임윤경 대표
평택평화센터

이번 평택시의회 제222회 본회의에서 ‘평택시 주한미군기지 주변지역 환경오염 정화를 위한 시민참여위원회 운영 조례’가 최종 가결됐다. 조례를 준비하고 발의해 가결되기까지 꼬박 열 달이 걸린 셈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번 조례는 평택시가 최초로 제정한 것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그만큼 관심이 많았고 미군기지가 있는 다른 지자체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제222회 본회의 회의 영상을 많은 사람과 함께 보게 된 이유도 관심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평택은 70여 년을 미군기지와 함께 살고 있다. 평택으로 미군기지 대부분이 이전하면서 지역사회는 사회적비용을 크게 치러냈다. 그 사회적비용의 대가로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이 주어졌다. ‘수도권정비계획법’으로 수도권에는 엄두도 못 낼 엄청난 규제가 평택에서는 완화됐고, 많은 대공장을 신설 또는 증설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평택지원특별법’에는 평택 미군기지 주변지역을 대상으로 5년마다 환경기초조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조사 주체는 환경부다. 미군기지 관련 사건·사고 80% 이상이 환경오염이기 때문에 기간을 정해 조사를 하겠다는 의지다. 환경부는 2013년과 2018년은 캠프험프리를, 2014년과 2019년은 평택오산미공군기지를, 1년이란 기간 동안 환경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평택 미군기지 주변지역은 대부분 광범위한 범위로 오염이 확인됐다. 하지만 오염 정화 작업은 평택시가 책임져야한다. 미군이 오염시킨 토양을 평택시가 책임지고 정화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번 평택시의회 본회의 영상에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것은 이러한 ‘평택지원특별법’ 관련 내용을 평택시의회 의원 대부분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염된 게 맞아요?” “구체적으로 조사한 게 있어요?” 특별법 관련 내용을 이야기하는 집행부에 “왜 5년이에요? 3년으로 바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조례의 목적이나 시민 참여의 중요성, 정화 책임 유무에 대한 질의는 없고, 정부 부처에 해야 할 문제 제기를 애먼 지자체 행정공무원에게 닦달하는 모습. 보는 내내 평택시민의 한사람으로 모욕감을 느꼈다.

시민을 대표해 행정집행부를 감시해야 하는 시의원. 집행부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며 집행 능력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시의회 의원이다. 이번 회의 내내 집행부는 조심스럽게 설명했고 끝내 알아듣지 못하는 시의원에게 “네 알겠습니다”라는 의무적인 대답으로 마무리했다. 건강한 민주주의 속에서 공적 갈등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장려돼야 한다. 갈등이 없는 공적영역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자기 위치를 모르면서 무지를 무기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공적갈등이 아니다. 설명하는 집행부에 “시의원을 가르치려하느냐”는 말은 분명 모두에게 조심스럽지 못한 행동이다.

“좋은 관계, 나쁜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조심스러운 관계만 있을 뿐이다” 사주명리학 마지막 구절이다. 나는 이 문장을 좋아한다. ‘조심스러운 관계’는 ‘믿을 수 없는 타인’과 ‘더럽고 험한 세상’을 넘어서는, ‘안전한 관계’의 시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공인이다. 공적영역에 있는 사람이다. 좋은 정치인 나쁜 정치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두에게 조심스러운, 자기와 타인에게 조심스러운 정치인이 있을 뿐이다. 자의식은 높으나 자존감은 낮고,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지만,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욕심은 끝이 없으나 노력은 엄두가 안 나고, 그러다 보니 자기 문제를 타인에게 모욕을 줌으로써 해소하는, 그래서 지금 시대에 ‘조심스러운 정치인’은 우리에게 절실하다.

대다수는 공부할 필요, 조건,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공부는 ‘전문가’ 의견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사회운동, 시민사회, 회사, 관료 조직을 막론하고 전문성 없는 실무자와 현장 능력 없는 전문가, 공부하지 않는 정치인은 걸어 다니는 재앙이다. 이들의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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