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휴가는
향기 짙은 커피 한잔으로
뒷마당 그늘을 지키며
만끽하려 한다

 

   
▲ 권혁찬 전 회장
평택문인협회

세상이 온통 불바다를 이루고 있는 더위의 절정에서 휴가란 말만 들어도 시원해지기 시작한다. 특히나 여름휴가란 더욱 그러하다. 시원한 바다나 계곡을 찾아 업무에 지쳐 피곤하고 고달팠던 몸과 마음을 쉬게 하면서 다가올 가을을 향해 재충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이다.

으레 7월이 다가오면 달력을 뒤적이게 되는 것은 연중 큰 행사임이 틀림없다.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하고 일행을 확정하여 하루 이틀 손꼽아 기다리다가 휴가 전날에는 밤잠을 설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여름이 오기 한참 전부터 우람하고 건장한 몸을 뽐내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여 몸만들기에 들어갔던 젊은 날들이 생생하다. 휴가철이 다가오면 중고 자동차가 불티나게 팔리던 때도 있었다. 이왕이면 여름휴가를 활용해 새로운 자동차를 마련해 신나는 기분으로 한해를 맞이하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다.

방학 동안 새까맣게 그을려 등교를 하면 제대로 된 바캉스를 즐기며 여름을 보냈다는 뿌듯한 성취감으로 으스대던 고교 시절의 추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화상을 입어 허물이 벗어져도 마냥 즐겁기만 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긴 겨울을 이겨내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열풍이 불어 닥치던 해변에서의 모래찜질처럼 뜨거운 성취감이란 오직 여름휴가에서만 누릴 수 있었던 특권임이 틀림없다. 뜨거운 모래바람에 몸을 기대던 모나코 해변의 여름휴가처럼 연인들 또한 사랑이 절정으로 무르익을 여름휴가를 기다리며 봄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우리에게 휴가라는 선물을 안겨주는 한여름 태양은 참으로 얄밉게 고맙기도 하다.

한창 더위가 절정인 순간 여름휴가라고 길게 숨을 내 뿜어 본다. 벌써 오래전 산이든 계곡이든 바다든 정해졌어야 할 행선지가 없는 여름휴가를 들먹이면서 함께 할 수도, 함께 갈 수도, 함께 놀 수도 없는 세상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긴 열대야가 심통이 났는지 쉽사리 사람들을 밖으로 내 보내 주질 않는 것 같다. 태양의 일정표가 어긋났는지 상쾌한 휴가 일정을 알려 주지 않고 있다. 온도계의 계시바늘이 심술이 났는지 고공에서 낙하지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식을 줄 모르는 여름 해는 길기만 하다.

오늘 밤 장고의 생각을 정리해 기어이 휴가 일정을 잡아 보리라 생각하다 에어컨 바람 속에 잠이 들어 계획이 빗나간 적 여러 날이었다. 밤잠이 문제가 아니었다. 뜨거운 열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여름휴가 계획을 완성하지 못한 채 매번 깊은 잠에 들고 마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닌, 세상의 뜻 때문이란 것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이다. 그래서 올 여름 휴가는 뒤울안 밤나무 그늘에 자리하나 펴고 아주 조금씩 흔들리는 감나무 잎을 바라보면서 겨우 매달린 작은 포도 알맹이를 크게 부풀리듯 넓은 바다를 상상하면서 시원한 냉커피 한잔으로 타는 속을 달래 보려한다.

코로나19 열기로 들썩이는 아침 일정을 정리하다가 여름휴가 계획도 서둘러 마무리해 본다. 눈과 귀와 온몸으로 만끽하려던 올여름 휴가는 진한 향 흘러나오는 향기 짙은 커피 한잔으로 뒷마당 그늘을 지키며 만끽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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