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가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게 활동할 수 있을 때
공동체는 더 좋은 사회로 간다

 

▲ 임윤경 대표
평택평화센터

때 이른 더위로 힘 빠진 저녁, 한 선배가 찾아왔다. 그 선배는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그리고 인권활동가로 20년을 넘게 살아왔고 여전히 지금도 현장에 있다. “요즘 너무 바쁘지? 힘들지?… 짝꿍은 잘 있지?” 선배는 저녁 내내 마음을 썼다. 

솔직히 말하면 그날 나는 많이 의기소침해 있었다. 안식월을 갖게 된 나에게 “안식월? 왜 못 버티겠어?” “문제 있어? 어디 아픈 거야?” “지금 긴급한 사안이 있는데 한 달을 쉰다고? 팔자 좋구나” 한 마디 두 마디 주변에서 말을 보탠 게 이유였다. 활동가로서 어떤 삶을 사는 게 중요한지, 왜 이 일을 하는지, 활동에 있어서 ‘그럼에도’ 쉼이 왜 중요한지, 누구도 묻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한다. “활동가들은 단체에서 활동으로 생계유지를 하고,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공익을 위한 소통을 동시에 하잖아.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직업), 행복한 일 아니야?” 맞다. 시민사회활동가의 일은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활력이 있는 삶을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이를 수긍하는 활동가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활동가들은 온갖 세상 문제에 골몰하느라 정작 자기를 돌보는 데 소홀하다. 그 결과 몸과 정신의 건강을 모두 잃었다. 일의 성과로 자기를 증명하느라 스스로 도구가 되었다. 그 결과 일상이 무너졌다. 맡은 일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동료에게서 멀어졌다. 그 결과 고립되었다. 미래가 없을뿐더러 현재를 지탱할 수 있는 신념도 흔들렸다. 그 결과 꼰대가 되었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 적게 벌어 아껴 사는 삶이 이어졌다. 그 결과 생활이 힘들다. 시민사회활동가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많은 권리와 자유들이 누군가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산다. 국가와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문제들을 찾아 해결하고,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서 때로는 투쟁하고, 손길이 닿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 지금 같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수고하고 헌신한 그 누군가는 바로 시민사회활동가들이다.

서울, 경기지역의 중간관리자 역할의 시민사회활동가로는 50대가 가장 많다. “이 사회에 우리 단체가 어떤 식으로든 기여를 하고 있는가” “지역에 없어서는 안 될 조직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기 어려운 세대이며 “누가 당신들(활동가들)에게 그런 힘을 위임했어? 선출한 권력도 아니지 않아?” 같은 비판적인 질문을 받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역 활동가들은 활동의 의미와 가치를 캐물으며 “왜 이 일을 하는 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선배와 헤어진 후 생각에 잠겼다. 가끔은 선배가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하루를 지냈으면 한다. 세상을 구하려고도 하지 말고. 미래를 짊어지고 갈 사람들을 키우지도 말고. 어떨 때 마음을 써야 하는지 동생들에게 알려주지도 말고. 선배 같은 활동가가 가슴 설레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게 활동할 수 있을 때, 공동체는 더 좋은 사회로 가지 않을까. 오늘도 날이 덥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