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아름다운
마음의 빚 하나쯤 얻어가며
살아가는 여유가 필요한 시간이다

 

   
▲ 권혁찬 전 회장
평택문인협회

이웃이 거들어준 품을 되갚아 주는 것이 품앗이이다. 더러는 내가 먼저 남의 일을 거들고 품을 놓기도 하고 서로 품 가락수를 헤아리며 각자의 필요한 날에 왕래하면서 농사일을 해 나가던 우리 전통의 아름다운 풍습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개념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너무나도 정확한 셈법으로 품의 비용을 계산해 그 즉시 지불하는 방식의 금전사회가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서로 간에 마음의 품앗이를 기억할 뿐 계산적 품앗이는 시도하지도 거래하지도 않는 세상이다.

올해는 시기가 좀 이른 추석을 앞두고 붉은빛을 띤 과일들이 익어가는 시기에 맞춰 긴 장마가 지나갔고 이어진 강력한 태풍 소식에 농가들의 시름이 짙어졌다. 풍성함을 느끼며 황금벌판을 지나 파란 가을 하늘을 만끽하면서 드라이브를 모색하던 일요일 아침 문득 아내는 품앗이 계획을 이야기하며 약 한 시간 여 거리에 있는 지인의 사과밭 현장으로 드라이브 코스를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다. 기꺼이 그리하겠다고 했지만 어떠한 품의 신세를 졌기에 품앗이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아내의 친구는 부군이 경영하는 사과 과수원과 직장을 오가면서 농장에서 취득한 소소한 것들을 날아다 주곤 했다. 이를테면 봄엔 각종 나물과 야채 그리고 여름엔 풍성한 푸성귀며 과일, 그리고 시내에선 구하기 어려운 각종 산물을 들고 와 함께 저녁을 하곤 했었다.

마음에서 우러난 일상에서 각박하지 않은 서로의 따뜻한 마음에 빚을 진 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참으로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 품앗이를 좀 해야겠다고 했다. 이른 새벽부터 분주한 농장에 도착한 우리는 간식 보따리를 풀어 한바탕의 담소로 휴식을 유도하고 자연스레 작업에 합류했다. 평소에도 손이 빨라 이웃의 칭찬을 받던 아내의 손끝이 더욱 빠르게 느껴졌다. 아마도 마음의 경쾌함이 손끝으로 이어져 그 리듬을 타고 신나게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 빚진 듯 지니고 있던 품 한가락을 내려놓듯이 가벼운 아내의 손놀림은 마치 피아노 건반 위에서 봄의 왈츠를 연주하는 듯이 명쾌해 보였다. 노동의 품앗이가 사라진 지금 서로의 마음에 지니고 있던 아름다운 품 한가락씩을 꺼내어 풍성한 가을을 맞아 되갚아보는 마음의 품앗이가 필요할 것 같다.

없는 듯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의 빚 한 자락씩을 떠 올려 보자. 계산과 타산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빈틈없는 세상에 잠깐의 시간을 부여해 간식처럼 쏠쏠한 허기를 달래 줄 작은 품 한 가락씩을 꺼내놓고 서로의 흉금을 털어가며 허허 웃어넘기는 세상이 그리워진다. 서로에게 빚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기보다 조금 양보해 스스로 떠안은 마음의 짐을 품앗이처럼 풀어나가는 아름다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해가 지고 작업이 끝나면 후히 집어 준 사과 몇 알이 차에 실려지게 될 것이고 우린 그 사랑 몇 알을 싣고 유쾌한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렇게 또 한가락의 품을 얻어 다음을 기약하는 새로운 품앗이 거리를 마음에 품고, 의미 있고 행복했던 주말 드라이브는 귀결될 것이다. 서로에게 아름다운 마음의 빚 하나쯤 얻어가며 살아가는 여유가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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