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업들도 밀레처럼 한다면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노사勞使가
함께 웃을 수 있지 않을까

 

   
▲ 백승종
역사학자

부자의 재산이 부럽다고 해서 함부로 가져갈 수는 없다.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우리는 상속세율을 고율로 책정했으나 그 효과는 거의 없다. 부자들에게서 걷은 상속세로 세상을 공평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세율을 조정한다고 해서 부의 편중이 쉽게 바로잡히지는 않는다.

부자에게도, 보통사람들에게도 득이 되는 방법은 없을까. 독일의 세탁기 회사 밀레가 생각난다. 밀레는 사람을 채용하면 여간해서 바꾸지 않는 전통을 자랑한다. 노동자에게 안전한 직장을 보장하는 것은 회사에도 이득이 되고 노동자에게도 득이 된다는 경영철학, 이 회사를 지배하는 문화는 그런 것이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은 ‘유무상자有無相資’의 삶을 강조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서로서로 의지해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독일의 밀레는 지금도 ‘유무상자’를 실천하는 셈이다.

이 회사는 1899년에 창립되었는데, 진공청소기를 비롯해 세탁기, 오븐 등 가사에 편리한 기계를 생산한다. 해당 분야에서 유럽 내 시장점유율이 부동의 1위이다. 제품의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소비자의 신뢰가 절대적이다. 2017년을 기준으로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4조 5000억 원쯤 되며, 노동자의 수는 1만 8000여 명이다.

평사원부터 CEO에 이르기까지 누구라도 한 번 채용되기만 하면 65세까지 일자리를 보장받는다. 이 회사도 불황으로 곤경에 빠진 적이 있었으나 사람을 내쫓지는 않았다. 독일 경제가 최악이었던 2004년에는 밀레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 당시 이 회사는 전자센터를 새로 설립해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수년 뒤 호황이 오자 매출실적이 껑충 올라가 모두가 만족했다.

지금까지도 밀레는 가족기업이다. 대표부터 경리 책임자까지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대표라 해도 화려한 개인 사무실을 쓰지 않고, 사원들과 다를 바 없이 일반 사무실에서 일한다. 밀레 같은 회사가 독일에는 제법 많다. 그것은 법적 장치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에서는 개인이 사적으로 상속받는 재산과 사업을 목적으로 승계 받은 회사자산을 엄격히 구분한다. 즉, 개인이 상속하는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세율이 최고 64%이다. 하지만 사업을 위해 계승하는 자산은 상속세를 대폭 감면해준다. 이로써 오랜 세월에 걸쳐 가문이 쌓은 경영과 기술상의 이점을 보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회사라도 고용을 안정시키고 확대할 공적 책무가 있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효과다.

상속에 관한 법과 관습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먼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의 재산을 자녀가 고르게 나누어 가졌다. 그러다 17세기 이후 유교 중심 사회가 되자 장자 중심으로 상속제가 바뀌었다. 어느 제도든지 장점도 있겠으나, 단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한계를 벗어나서 세상을 정의롭고 따뜻하게 만들려는 노력이다. 만약 우리 기업들도 밀레처럼 한다면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노사勞使, 노동자와 경영자가 함께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파업 소식에, 나도 모르게 해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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