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주는 용돈 가슴 아프다던 엄마, 이젠 편히 쉬세요!

 
세상엔 기다려주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때문에 지난 수세기 동안 많은 현자들이 ‘지금’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을 살고 있기에 ‘지금’의 중요성을 자주 잊고 살아간다. 평택시 세교동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서순옥(50)씨는 얼마 전 친정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야 ‘지금’의 소중함을 실감하고 있다.

돌아가실 때까지 흐트러진 모습 안보였던 엄마
“엄마는 위암 말기셨어요. 작년 추석 지나고 몸이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죠. 위출혈이 있음에도 수혈받기 싫다는 엄마한테 왜 그러냐고 화도 내고 그랬는데 그렇게 위급상황까지 가실 줄은…”
서 씨는 말을 잇지 못한다. 어머니의 부재(不在)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탓이다. 서 씨의 어머니는 88세의 나이로 작년 12월에 작고하셨다. 88세라니 어떤 이들은 사실만큼 사셨다고 말할 법도 하지만 자식에게 있어 부모의 죽음이란 나이와는 상관없는 일. 어머니의 죽음은 서 씨에게 아픔 그 자체다.
“돌아가실 때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어요. 저렇게 아프면서도 끝까지 여자이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항상 매무새를 깔끔하게 하셨죠. 대소변 받아내는 거 싫다고 끝까지 화장실 다녀오시고 흐트러진 머리도 늘 단정하게 만지셨어요. 처음엔 아픈 분이 왜 저렇게까지 하시나 불만이었는데 차차 그런 엄마가 참 예뻐보이더라구요”
평생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했던 서 씨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 건 그때다. 그러자 뜻밖에도 평생 그런 말 할 줄 모를 것 같던 어머니가 “나두 사랑해”하며 서 씨에게 대답했다고. 서 씨는 지금도 왜 진작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 더 하지 못했는지 못내 후회스럽다.

임종 전 8남매에게 효도기회 주신 엄마
“언젠가 한번은 제가 아끼던 앙골라스웨터를 엄마에게 드린 적이 있어요. 너무 좋은 거라서 제가 아까워 입지 못하고 있다가 엄마에게 드렸는데 며칠도 안 돼 동네 친구 분에게 벗어 주셨더라구요. 그분이 입고 싶다 하셨다고. 늘 그러셨던 분이라 새삼스럽진 않았어요.”
서 씨를 비롯한 8남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위암이라는 판결 후 어머니를 사시던 대천 집으로 모셨다. 그 후에도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몇 달을 병과 싸우며 자식들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오빠, 언니를 비롯해 자식들이 돌아가며 엄마 곁을 지켰어요.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던 저 까지도 1주일에 한번 씩 내려갔으니까요. 늘 남을 먼저 배려하던 분이니까 아마도 남아있는 자식들 마음 아프지 않게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으셨나 봐요.
당신에겐 더없이 인색했지만 남에게 늘 베푸는 삶을 사셨다는 서 씨의 어머니는 짧은 시간동안 일상에 매여 소원했던 자식들이 일일이 효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후 모든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하셨다. 서 씨는 지금도 “네가 주는 용돈은 너무 힘들게 번 돈이어서 가슴 아프다”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겁다.

인연으로 미용실 찾는 손님, 정성으로 맞고 싶어
벌써 15년째 미용사로 일하고 있는 서 씨는 현재 평택 세교동에서 ‘나리헤어’라는 작은 미용실을 혼자 운영하고 있다. 손님 몇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작은 공간이지만 그 곳에 있을 때 그녀는 가장 행복하다고.
“미용 일은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예요. 하루 종일 머리를 만져야 하고 손님들을 맞아야 하지만 제 자신이 미용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웃으며 일할 수 있지요. 얼마 전 미용실을 그만두고 한 3개월을 쉬었는데 가위질이 너무 하고 싶어서 가만히 못 있겠더라구요. 미용실 홍보요? 따로 안 해요. 어차피 많이 오셔도 저 혼자 다 감당할 수도 없거든요. 그냥 한 분 한 분 오실 때마다 정성을 다하고 시간 지나면 친구도 되고 언니도 되고 그렇게 지내는 게 좋아요”
그동안 미용 일을 하면서 까다로운 손님을 맞거나 특이한 손님을 맞은 적도 많았다는 서 씨는 그래도 자신이 택한 이 직업이 마냥 좋다며 활짝 웃는다. 비록 엄마가 너무 힘든 직업이라 용돈도 가슴 아파 못 받겠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그녀는 이 직업으로 인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언젠가 한 노숙인이 이발비로 꺼낸 꼬깃꼬깃한 지폐와 동전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공손하게 인사했듯이 그녀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미용실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일하며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을 다해 맞이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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