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임윤경 대표평택평화센터
임윤경 대표
평택평화센터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은 세계적인 뉴스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랍에미리트의 주적은 이란이다’라는 발언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적’의 개념이 궁금하다. 원래 ‘주적’은 중세 유럽 봉건사회에서 영주의 적을 가리켰던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20여 년 동안 계속 사용해 익숙해졌지만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등장한 말이다. 1994년 북한 핵무기 관련 논란이 있었고 그다음 해 국방백서에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주적은 북한이다’라고 명시된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이야기다. 그다음 노무현 대통령 때 국방백서에서 주적이란 단어가 사라졌다. 그러다 다시 윤석렬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일관성 있게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지금 국제정세는 동북아시아를 둘러싸고 적대화의 언어가 누적되고 있다. 전쟁 연습이 계속되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불신이 축적되고 있고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아주 사소한 계기도 큰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무지에서 나온 발언이 실언이라고 하기에는 그 파장이 크다. 그의 발언들은 군사적 긴장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우리는 이미 윤 대통령의 적대적 언어 사용으로 지난 11월 전쟁 촉발이라는 군사적 긴장 상황을 한 차례 겪은 바가 있다.

2021년을 기억해보자. 우리는 뉴스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을 포함한 서방 사이의 군사적 긴장과 함께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립이 심화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예고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군사적 충돌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지금 한반도도 미국, 일본, 한국, 북한이 모두 선제공격을 외치고 있고 선제공격을 준비하고 있으며 전쟁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런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노력이나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한반도 상황은, 한국전쟁 발발 1년 전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70여 년 동안 남북은 갈등 상황을 대처하는 유사한 패턴이 있었다. 남북갈등이 심화되면 어떤 식으로든 대화국면을 만들었고 그 결과로 갈등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대화’가 빠진 상태다.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길은 한반도에 국지전과 유사한 사고가 발생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야말로 위기 상황이다. 하지만 분단 상황에 익숙한 우리 사회는 이 군사적 긴장을 익숙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상황이 준비가 안 된 대통령의 무지 때문이라 책임을 떠넘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민주사회의 구성원이자, 한반도의 한 구성원으로서, 평화를 바라는 지구인으로서 책임져야 한다. 이 세계에서 또 다른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국 이 세계를 바꾸는 것은 사람들의 힘 외에는 없다. 적대가 아닌 협력을 통해 공동의 안보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우리는, 시민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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