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헤아리는 측량의 기술과
마음을 헤아리는 대화의 기술은
참으로 많이 닮았다

권혁찬 전 회장​​​​​​​평택문인협회
권혁찬 전 회장​​​​​​​평택문인협회

헤아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세심한 배려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아주 정교하고도 정확한 축적의 기술이 동원되어야만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주변과의 이해관계를 풀어 나갈 기법이나 노하우 같은 비결도 곁들여져야 하며, 좁은 곳에서 넓은 곳을 바라보며 그 속에 묻힌 작은 나를 정확히 찾아 그려내야만 하는 고도의 첨단기법이 필요하다. 조금의 사심이나 편법이 존재할 수 없으며 사사로운 편향에 의해서는 더욱더 불가능한 기술이기도 하다.

측량이란 측지기술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해관계와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문중의 토지를 임대받아 경작 중인 임차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꽤 오랫동안 경작하면서 큰 불편 없이 지내왔으나 얼마 전 이웃과의 토지 분쟁이 있었다며 정확한 측량을 하여 명확한 경계를 설정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언제서부터 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오래전부터 소유하고 있던 문중 토지인데 인제 와서 새삼 경계가 불명확하다는 제안을 받고 심히 불편하기도 했다. 농지다 보니 서로 마음 구분 두지 않고 밭둑 하나로 지켜오던 경계가 갑자기 무너진 이유가 궁금해 찾아가 물은 즉, 옆에 새로 이사 온 땅 주인이 구전으로만 전해오는 경계를 신뢰할 수 없다며 한두 걸음 더 안쪽으로 자신의 땅을 주장하며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큰 문제는 아니므로 경계를 복원하는 측량을 의뢰할 터이니 그에 따라 확인하면 될 것이라 전언하였다. 그러나 농업이 주 생업이었던 농경의 문화가 산업화되면서 변해버린 민족 정서가 와해되어 가는 또 한 번의 과정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쪽이 멍할 정도로 새삼 충격적이기도 하다.

드디어 예정된 약속일에 토지 정보기관의 시간 약속을 공유하고 현장으로 집결한 이해 당사자들은 그저 서먹서먹함 그 자체로 계면쩍은 인사치레를 나누고 모두의 시선을 측량기사의 움직임에 고정하였다. 이미 이 측지 기사의 움직임이 곧 법이라는 것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측량을 마친 성과도를 받아 들고 서로는 어설픈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주장했던 경계로부터 양자가 서로 조금씩 물고 물리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맹수처럼 서로 으르렁거릴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서로 후회스러운 대화도 없었다. 그냥 석연치는 않지만 무언가 어두운 부분을 밝혀냈다는 안도의 화색만 공유한 채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평화가 찾아온 빈 밭에는 작년에 거두고 흘려 둔 빈 곡식 대궁만이 허리를 구부리고 서서는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했다.

토지의 용적을 헤아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용이하게 측량이라는 기술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그러나 말 없는 무형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참으로 난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측량의 기술인 꼭짓점과 꼭짓점을 이어 선을 그으면 완성되는 성과도처럼 그것이 절대적이라 받아들이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좌, 우, 산과 건물을 기반으로 좌표를 잡아 정확하게 점을 찍어 지적도를 그려내는 측량의 기술처럼 우리들의 생각도 확실한 기반에 토대를 두고 점을 찍듯 대화할 때 다툼 없는 세상이 되리라 믿는다. 땅을 헤아리는 측량의 기술과 마음을 헤아리는 대화의 기술은 참으로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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