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을 위한 정책을 결정하며
실행하길 바란다

공일영 소장청소년역사문화연구소
공일영 소장
청소년역사문화연구소

최근 개봉한 설경구, 이하늬, 박소담 주연의 영화 ‘유령’은 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활동한 항일조직 ‘흑색단’이라는 곳에서 비밀리에 활동한 스파이 유령의 활약상을 다뤘다. 육삼정 의거는 김익상 의사의 황포탄 의거,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의거와 함께 상해 3대 의거로 꼽힌다. 1933년 3월 17일 상해 남화한인청년연맹의 행동단체인 흑색공포단이 주도한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 암살미수사건이다. 백정기, 원심창, 이강훈 등은 고급요정 ‘육삼정’에서 주중일본공사인 아리요시가 만찬을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폭탄과 권총을 갖고 인근 중국요리점 송강춘에서 기다리던 중 일본 첩자의 밀고로 모두 잡혔다.

이 사건으로 백정기, 원심창 의사는 무기징역을, 이강훈 의사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백정기 의사는 다음 해 옥중에서 순국했으며, 원심창 의사와 이강훈 의사는 해방 후 출소했다. 거사는 실패했지만, 중국과 한국 등지의 신문들이 암살계획을 대서특필하면서 침체기에 있던 국내항일운동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원심창 의사는 평택 출신으로, 1919년 고향에서 전개된 3.1운동에 참가한 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나키즘 사상을 수용해 박열과 같이 흑우회에 가입하였다. 1924년 8월 무정부주의 계열의 노동조합인 동흥노동조합에 가입해 항일운동을 계속했다. 1925년 9월 무정부주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북경·상해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포들을 설득했다. 1926년 5월에는 사상을 구체적으로 전파하고 무정부주의 실천을 위해 행동기관지 <흑우> 제2호를 발간해 이를 널리 홍보했다. 1928년까지는 흑풍회와 흑우연맹에서 무정부주의 사회실현운동을 전개했다. 1929년 4월에는 일본 동경유학생학우회의 이른바 폭력행위사건으로 3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1931년 6월 상해에서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입해 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11월에 흑색공포단을 조직하는 데 참여했다. 더불어 의열 투쟁에도 적극 참여했다.

지난 3월 1일 삼일절 기념식에서의 대통령 연설로 인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반성은 일언반구 없고 미래를 향해 대승적으로 함께 나아갈 협력자이며 동반자라는 표현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배상 해법 최종안 발표를 놓고도 논란이 크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은 ‘제삼자 변제’ 방식을 통한 국내 기업들의 출연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그것으로 지불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청구권 자금 수혜를 입은 국내기업이 우선 출연하는 방향으로, 포스코 등이 주요 해당 기업이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담아내지 않고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최종안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반영되지 못했다고 한다. 일부 평론가들은 현 정부의 무능과 오만이라고 평한다. 앞서 언급한 육삼정 의거는 비록 실패했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독립에 대한 열망을 다시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위정자들은 제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을 위한 정책을 결정하며 실행하길 바란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