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기 위해서
오늘을 잘 살아내는 것
그것이 첫 번째 해야 할 일

김진숙 센터장더인재가복지센터
김진숙 센터장
​​​​​​​더인재가복지센터

몇 년을 섬겼던 어르신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보호자 연락을 받고 요양병원에 갔다. 평소 검은머리를 곱게 정리하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반갑게 맞아주셨던 어르신이셨는데 몇 달 사이 죽음 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 각종 의료장비에 얼굴은 개나리처럼 노랗고 초록가래를 컥컥 뱉어내고 계셨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방문요양을 운영하다보니 어르신들의 죽음을 가까이 지켜보며 누구나 처음인 죽음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 그 죽음과 친해보려 한다.

어르신들을 만나면 제일 많이 하시는 말씀이 “아퍼…,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에구, 너무 오래 살았어. 죽어야하는데 죽지는 않고”하신다.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실감하면서 준비한 말씀일까?

병원에 며칠 계신 분을 퇴원하신 후에 찾아뵈면 “이번에 죽는 줄 알았어” 하시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시는 걸 보면 죽음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멀리 있는 것이라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신이 찾아와서 “네가 죽기 전 마지막 3개월의 수명을 나에게 팔아라. 내가 100억을 주지”하면서 거래를 요청하면 ‘헬조선’이라 부르며 사는 젊은이들은 거래에 당장 응한다고 하는데 정작 어르신들은 대답을 안 하신다고 한다.

어르신들에게 가끔 “어떻게 죽고 싶으세요?”하고 물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 무병장수하다가 죽고 싶다. 둘, 잠자다가 죽고 싶다. 셋, 가족이 함께 있을 때 죽고 싶다. 넷, 집에서 죽고 싶다. 다섯, 죽는 걸 미리 알고 죽고 싶다. 여섯, 신앙을 통해 위로받으며 죽고 싶다 등을 요구하는데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병원에서 인공호흡기 달고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죽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는 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낯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을 가능성이 더 높다.

예전에는 밖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객사’라 해서 좋은 죽음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에 임종이 가까우면 병원에 계시다가도 집에 모시고 와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할 수 있게 했는데 세상이 많이 변한 셈이다.

어르신들의 유행어 가운데 “9988234”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다가 4, 죽자는 말이다. 건강하게 살다가 죽을 때 자는 듯이 죽고 싶다는 소망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 피해서도 안 되는 것이 죽음이라면 당당히 맞서 준비하는 건 어떨까?

자는 듯이 죽기위해 매일 운동도 하고, 매년 유언장도 써보고, 자신의 장례식도 상상해보고, 자식들이 유산가지고 싸우지 않도록 미리 정리하고, 고독사나 자살로 생이 마감되지 않도록 주변을 정리하고, 미안했던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 말하고, 그리운 사람들이나 사랑했던 사람들을 만나서 사랑한다고, 고맙고 감사하다고 이왕이면 웃으면서, 이왕이면 예쁘고 멋지게 죽음을 맞이하면 어떨까?

내 죽음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한다. 잘 죽기 위해서 오늘을 잘 살아내는 것, 그것이 첫 번째 해야 할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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