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상회담으로
우리는 다시 한번 절망을
떠올리게 되었다

임윤경 대표평택평화센터
임윤경 대표
​​​​​​​평택평화센터

전 세계에서 한국과 공통점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이다. 연공서열제, 일명 ‘호봉제’도 한국과 일본만 지키고 있고 검찰제도 또한 한국과 일본만 같다. 시험을 통해 공직에 들어가는 것도 한국과 일본이고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도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뿐인가 전 세계에서 일본어를 배우는 인구의 76%가 한국인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외국인을 위한 일본어 공부책 중에 한국어판만 없다. 한국어판을 따로 내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국을 무시하는 행동이기도 하고 한국인이 일본어 공부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 특유의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즉 겉과 속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대화에 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이는 국제 정치와 외교에 치명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12년 만의 한일 정상회담이 종료됐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 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선언했고 이후 일본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개방되면서 한일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선언문에는 오부치 총리가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하지만 이번 회담 이후에는 공동선언문이나 합의문이 따로 나오지 않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문제인 부분은 과거사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공식적인 발표 내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기시다 총리가 한일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구했다” “그중에 당연히 ‘다케시마’, 즉 독도 문제도 포함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반면 대통령실은 “위안부 문제든 독도 문제든 논의된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누구의 입장이 맞는 걸까. 정상회담 이후 공동선언문이나 합의문이 따로 없으니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것 몇 가지. 12년 만의 회담이었고 윤 대통령에게 내세울 만한 성과가 필요했다면 왜 공식적인 합의문을 만들지 않고 담화로만 끝냈을까? 일본의 독특한 속뜻, 외교방식을 몰랐던 걸까? 무엇보다 취임 후 이어지는 윤 대통령의 외교적 말실수는 이번 정상회담과 무관할까.

몇 달 전, 국민일보가 윤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설문조사를 시행한 적이 있다. 당시 설문은 윤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긍정단어 4개와 부정단어 4개를 미리 설정한 채 진행됐다. 그 결과 응답자의 33.1%가 1위로 ‘절망’을 꼽았다. 커다란 업적도 없고 내세울 만한 정치적 성과가 없으니 피상적인 단어만으로 설문한 것은 이해하겠지만, 윤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절망이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나 또한 절망을 떠올리지만, 여기서 국민들이 생각하는 절망의 의미는 뭘까? 이제 이 나라는 망했다? 희망이 없다? 절박하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우리는 다시 한 번 절망을 떠올리게 되었다.

‘최소한의 품격도 책임도 사라진 정치’ ‘여러 차례 반복된 외교·안보 분야의 말실수’ ‘당내 문제 개입’ ‘주 69시간 노동’ 등… ‘대통령 놀이’에 열중할 뿐, 나라를 통치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그. 이제 우리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절망을 안고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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