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소망하는 사회는
피해자의 모든 고통을 안아주는
어떤 고통도 밀쳐내지 않는 사회

임윤경 대표​​​​​​​ ​​​​​​​평택평화센터
임윤경 대표
평택평화센터

지난 1월 12일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국가의 2차 가해’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세월호 희생자 118명의 유족 355명이 소송한 후 8년 만의 판결이다. 소송의 주요 내용은 두 가지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제공 등 피해를 키운 국가의 책임과 청해진해운에 대한 소송이다. 1심 판결은 정부 책임도 인정하고 청해진 책임도 인정한 공동 위자료 지급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유족 중 228명이 1심에 불복해 항소한다. 국군기무사령부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비롯한 국가의 2차 가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달라는 추가 청구였다. 2심 판결은 국군기무사령부가 직무와 무관하게 세월호 유가족의 인적 사항과 정치 성향 등을 사찰해 보고함으로써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걸 인정했다. 따라서 유가족에게 국가가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판결이다. 이번 2심 판결에 법무부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이번 소송처럼 국가가 피고인 경우, 법무부는 어느 정도 국가의 손실을 막기 위해 끝까지 불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송에서 법무부는 항소를 포기했다. 이유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이 명백히 확인됐고, 신속하게 재판을 종료해 피해자의 피해를 복구시키려는 취지라고 했다. 어찌 되었든 국가의 2차 가해에 대해 법원에서도, 국가에서도 인정하고 더 이상의 불복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번 판결이 가지는 의미다.

국가 책임을 인정한 유사 판결이 또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번 세월호 판결도 국가가 국민을 사찰하거나 편을 나누는 것은 안 된다고 명확히 했다.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 2심 4년 3개월, 1심을 포함해 모두 8년이 흘렀다. 유가족들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사법부에서 이런 판결이 나왔다는 것이 유가족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

이제는 국가 차원의 사과와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한 재발 방지책이 나와야 할 때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국민의 피해 회복 문제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 문장에 공감한다. 여태 4.3, 세월호, 광주, 이태원 참사 등 모두 정쟁의 요소가 됐다. 피해자 입장에서 피해가 자명한 사실로 인정되지도, 가해자에 대한 응당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다.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비슷한 일이 무섭도록, 빨리, 같은 방식으로 반복됐다. 구조적 해결도, 잊지 말자는 다짐도 공염불처럼 떠돌았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 이번 판결은 그나마 작은 희망이다. 다가오는 아홉 번째 봄, 국가 차원의 사과를 희망하는 건 나뿐일까.

언제 터지질 모르는 재해, 참혹한 ‘과거사’, 최악의 노동조건, 혐오 범죄, 학교 폭력 등 ‘있을 수 없는 일’은 항상 주위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소망하는 사회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안 일어나는 사회’가 아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사회는 희생된 피해자의 모든 고통을 안아주는, 어떤 고통도 밀쳐내지 않는 사회다. 올해도 안산 고잔동에 벚꽃이 피었다. 벌써, 아홉 번째 봄이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