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피해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성찰할 필요가 있다

김태정 활동가두레방
김태정 활동가
두레방

소피아 언니의 장례식은 가족 없는 무연고자로 치러졌다. 언니의 죽음을 오열하며 보내는 가족은 없었지만, 센터 ‘품’의 모든 활동가들이 언니 장례식에 참석해 조용하고 묵직하게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언니를 알게 된 건 센터 품이 집결지 ‘삼리’에서 아웃리치를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나갈 때쯤이었다. 의료 지원이 필요한 사례로, 이미 시한부 판정을 받은 언니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먼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힘든 상황에 센터 품에서는 언니의 의료동행을 지원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했던 언니는 집을 나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이끌려 기지촌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30년의 시간 동안, 언니의 젊은 시절부터 중년이 되는 그 시간 동안 집결지와 유흥업소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병이 들고 나서야 그곳에서 해방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돌아갈 집은 없었다.

소피아 언니 이야기는 어느 소설, 또는 어느 드라마의 신파극이 아니다. 불과 며칠 전인 지난 5월 센터 품에서 있었던 일이자, 이미 성매매피해여성들이 겪어 왔던, 한국의 성산업 구조 속에서 되풀이 되는 일이다. 가족의 경제적 지원을 위해, 가정폭력으로 인해 가족 밖으로 내몰린 여성들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반면, 여성들의 취약한 상태에 내몰린 여성들을 이용하려는 검은 그림자들은 지천에 도사리고 있다. 

한국으로 E-6 비자를 받고 입국한 이주여성들은 가수라는 이름으로 한국정부가 허가한 비자를 받고 들어오지만 정작 기지촌, 항만 부근 클럽에서 성매매피해를 받는다. 이중 대부분은 그 상황에서도 끝까지 한국에 남아 본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경제적 돌봄을 한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아픈 몸이 되었을 때, 더 이상 경제적 도움이 되지 않는 여성들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 경우를 목도했다. 

‘소피아’라는 이름은 언니가 센터 품의 드로잉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우연히 만들어진 이름이었지만,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한 언니는 작은 스케치북에 ‘소피아’ 글자를 적고 다양한 색깔로 흰 도화지를 채웠다. 언니는 지난 1년 여간 센터 품의 다양한 치료회복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동안 폭넓은 경험이 부족했던 언니는 만두를 만드는 것도, 파스텔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언니들의 삶을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은 “21세기에 이런 일이?”라고 되묻는다. 그렇다,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모두에게 보이지 않았던, 모두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무수한 언니들’의 사례는 우리의 삶의 이면에서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다. 가족의 해체, 변함없는 성착취 구조 그리고 그 사각지대 안에서 희생되는 여성들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어느 세기를 살던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 될 것이다. 성매매피해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그 다른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소피아 언니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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