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눈시울 붉어도
서로에게 용기가 되는
위기를 연동하는
지혜를 가지자

유영희 시인
유영희 시인

법정 스님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복하라’고 하셨다. 또 ‘봄이 가고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그와 같이 순환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우주의 호흡이며 율동이다’라고 했다.

세상이 온통 물이 휩쓸고 간 이야기로 가득하다. 기후변화로 해마다 비 피해 강도가 커지고 비의 형태는 집중호우로 쏟아붓는다. 괴산댐 월류로 마을이 통째로 사라져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 사과 과수원과 하우스 농작물에 진흙이 덮이고, 우사와 사람의 집, 다리와 도로가 떠밀려 유실되고, 인명과 가축이 생사를 넘나드는, 생존과 고립의 아비규환을 바라보는 예천 주민들의 망연자실한 모습에 안타까움만 더한다. 어떠한 위로로도 그들의 아픔을 대신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어린 시절, 잊지 못할 선명하게 남은 세교동에 대한 기억이 있다. 장마철 무섭게 퍼붓는 비로 낮게 얼기설기 엮은 통복천 다리가 붉은 토사를 품고 넘실거리는 앞에서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여 물 구경을 하였다. 물의 근육이 성난 듯 무서운 속도로 흘러갔다. 그날 밤 곤히 잠든 우리를 깨우는 아버지 목소리가 다급했다. 엄마는 커다란 보따리 두어 개 꾸리시고 피신할 준비를 마치셨다. 아산만 방조제 제방이 건설되기 전이어서 항상 같은 물난리를 되풀이하며 가슴 졸이며 살았다. 그러다 1974년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성천 하구에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지긋한 물과의 전쟁도 끝이 났다.  

크고 작은 피해 소식이 전해지는 시간을 잠시 벗어나 세교동 ‘세로야’ 산책로를 걷는다. 메타세쿼이아 나무와 소나무가 하늘을 찌르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먹구름 몰린 하늘이 조금씩 밝아온다. 길 건너 아래에 있는 통복천도 수위가 낮아졌지만, 황톳빛 물살 유속은 여전히 급하다. 인도에 넘친 개천물과 풀덤불에 갇혀 미처 빠져나가지 못 한 강준치 물고기가 말라있는 모습을 보니 세상 모든 수난의 시간은 그 누구도 자연에 대항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비가 그치면 생명 활동은 더 씩씩하게 이어진다. 매미가 그들의 짧은 시간이 서러워 그악스러운 떼창을 하고, 참새와 까치가 먹이를 찾느라 부산하다. 발밑에 부푼 개미집을 밟을까 조심하며 걷는다. 사는 일은 진부하지 않고 왕성해서 힘이 돋는 사실이 흥미롭고 행복하다. 사는 일과 사는 법은 놀랍고 존귀한 법이다. 

산책길은 구간마다 다양한 수종을 심어 심심하지 않다. 세찬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널브러지고 간간 비추는 햇살이 젖은 나무와 물상과 새들의 깃을 뽀송하게 말린다. 지금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복할까, 여름을 지나는 수마가 할퀸 상처로 아우성이지만, 불행 뒤에 올 행복과 결연해 보자. 자기 앞의 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예측불허를 가지고 있어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는 긍정의 자세가 필요하다. 살아가는 일에 가장 중요한 물도 넘치면 사족이 되듯이 참담과 암울의 심리 지속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기 앞에서 다시 살아내야 할 일에 집중하자. 생명의 연속성은 거기서 온다고 본다, 삶이 푸른 이유는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있다. 설해목雪害木처럼 쌓인 잔해의 곳곳, 사람들 눈시울 붉어도 서로에게 용기가 되는, 위기를 연동하는 지혜를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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