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진과 유물이
흐릿해지던 나의 기억 속에서
소환될지 벌써 설렌다

백인태 주무관평택시 문화예술과
백인태 주무관
평택시 문화예술과

‘어느 소장가의 재미있는 수집이야기’의 시작은 고물상 사진이었다. 무엇이 보이냐는 물음에 나는 작은 소리로 ‘고물’이라고 답했다. 사실 고물상에 있는 건 고물일 뿐이다. 다음 화면에서는 그 고물들이 정크아트 예술가의 재료가 되어 새로운 가치의 예술작품으로 변화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가치는 만들어 가는 것’이란 작은 제목이 눈에 띄었다.

다음으로 그는 낡은 차를 아들에게 선물한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버지는 낡은 차를 아들에게 선물하며 중고차 딜러에게 가격을 물어보라고 했고, 아들은 중고차 딜러에게 1000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답했다. 다시 아버지는 폐차장에 가서 가격을 물어보라고 했고, 아들은 폐차장에서 500달러를 받고 팔 수 있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그럼 골동품상에 가서 가격을 물어보라고 했는데 골동품상에서 아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고 답했다. 이 낡은 차는 수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골동품이라는 것이다. 즉, 유물은 그 가치를 알았을 때 유물이 된다는 말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정크아트가 될만한 잠재력을 지닌 고물들이, 골동품상에서 수만 달러에 사고 싶어 하는 자동차가 폐기되고 버려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치를 알아주고 가치를 만들어 줄 사람이나 조직이 부족하다는 것. 이렇게 우리는 잠재적 가치를 지닌 것들을 눈뜬장님처럼 고물이라고 치부하며 스스로 폐기해 버렸다. 많은 것이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개인 차원에서 그런 노력을 한 우리 지역 사료 수집가가 박성복 평택학연구소장이다. 이 개인 수집가는 지금의 소장가가 되기까지 혼자의 힘으로 유물들을 수집했다. 기자라는 또 다른 직업을 통해 평택의 역사 현장에 있었고, 거기서 소홀히 할 수 있는 유물들을 수집했다. 

1977년 서울로 향하던 열차가 통복동 건널목을 지나던 중 시동이 꺼진 버스와 충돌한 사건으로 만들어진 통복고가교는 2021년 철거되기 전까지 철뚝 너머에 살던 이들이 시내를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으로 역할을 했다. 이때도 그는 철거되는 마지막 순간의 사진을 찍고 통복고가교의 마지막 조각을 수집했다.

평택항 서부두는 평택시와 당진시가 헌법재판소까지 가서 분쟁한 지역이다. 최종적으로 평택시에서 승소하여 평택시 땅이 되었는데, 이 집념의 수집가는 평택시 땅이 되기 전 당진시로 표기된 토지대장을 모두 발급하고, 평택시로 바뀌자마자 다시 토지대장을 발급했다. 이렇게 그는 100만 장의 사진과 3개의 수장고를 가진 평택지역 대표 소장가가 됐다. 

2026년 우리 지역에도 박물관이 생긴다. 평택시는 몇 년 전부터 박물관팀을 만들어 우리지역 유물을 조직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이때 박성복 소장도 개인 소장품을 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2026년 박물관이 개관하는 그 날, 어느 소장가가 자신의 수장고에 꼭꼭 숨겨뒀던 소장품과 박물관팀 학예사들이 엄선한 수집품들이 평택시민에게 공개될 것이다. 

나는 개관하는 그 날 멋지게 전시된 낡은 육교 사진과 학교 가는 길 만원 버스가 힘겹게 오르던 통복고가교의 마지막 조각을 볼 수 있길 기원한다. 또 어떤 사진과 유물이 흐릿해지던 나의 기억 속에서 소환될지 벌써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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