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우의 월든 호수가 호젓하듯이
격정과 걱정은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자는
우리의 태평가 앞에서 누그러지리라

유영희 시인
유영희 시인

태평가 가사에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가 있다. 태평太平은 나라나 세상이 안정되어 걱정 없이 평안한 상태를 말한다. 태평가를 들으며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시기를 떠올려 보거나, 국악계의 백파이프란 별칭으로 소리가 크고 힘차며 흥겹고 음빛깔이 쾌활하여 풍물놀이 주요한 가락악기로 불리는 태평소 소리에 태평을 기원하는 마음을 대신해 본다. 나, 너, 우리, 국가, 세계, 지구, 우주로 확장되는 평화로운 근원은 작은 것에서 주어지는 법이다.

연일 폭염경보, 온열질환 사망자 발생, 야외활동 자제 안전 안내 문자가 뜬다. 거기에 태풍으로 인한 강풍 대비도 더한다. 매년 여름이 그렇지만 올여름은 화기火氣의 여름임을 더욱 체감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매장에는 날마다 엄청난 양의 박스와 일회용 종이컵, 플라스틱 컵과 빨대, 과일 포장 투명케이스와 비닐, 끈, 각종 스티로폼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이틀에 한 번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시는 허리 굽은 아저씨 덕분에 물품 검수장은 말끔해진다.

주변을 조금만 돌아다보면 모두 열심히 일하는 모습만 보인다. 파지 줍는 노인의 수레에도 얇은 종이와 병이 차곡하다. 구둣방 할아버지는 낡은 구두를 수선하시고 택배기사와 우편배달부, 음식배달 오토바이도 정신없이 달린다. 바쁘게 사는 모습, 건강한 소리는 마음을 훈훈하고 든든하게 하는 힘이 있다. 삶은 경험의 연속으로 혜안이 밝아지고 성숙해진다. 어디에서든 오랜 시간 성실이 몸에 밴 사람들은 불평 없이 묵묵하다.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잔뼈가 굵다’고 한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팔순에 이르는 난전 생선장사 애숙이 아줌마와 야채장수 훈이 할머니가 그렇다.

그와 다르게 가끔 속에서 천불이 난다. 삶의 영위 가장 큰 목적은 행복인데 몸이 망가지도록 고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심 안타깝다. 평생 일만 하고 살아도 가난한 사람들 행복은 성실의 결과와 무관하다는 결론에 혼란스럽다. 그 옛날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어진 왕의 시대에도 분명 끼니를 걱정하는 백성이 있던 것처럼 완전할 수 없는 불완전함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법칙은 아닐까.

대책 없이 평화로운 사람을 두고 “어찌 그리 태평 하냐”고 한다. 그들은 다 생각이 있다는 듯 싱글거릴 뿐이다. 심법요초心法要抄에 따르면 ‘사람은 본래부터 태평하다, 人人本太平’고 했다. 사실 근심거리가 많은 나도 근심덩어리 깨어버리고 사는 것은 걱정이란 깰 수 있는 유기체가 아니란 걸 알아챈 센스 때문이다.

박옥초 국악 연구원에 따르면 태평가 가사는 28종이 있다고 한다. 그중 날씨와 상관된 가사가 매우 익살스럽다. ‘비 오면 미투리 안 팔리고 해 나면 나막신 안 팔리고 비가 오면 비가 와 탈이요 안 오면 안 와서 걱정 일세’에 모든 후렴구는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나 좋다 벌나비는 이리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며 밝고 명랑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와 다르게 날씨처럼 돌아가는 세상 소식은 흉흉하고 어수선하다. 오늘 잘 살아온 것처럼 내일 할 일이 기다리는 우리다. 소로우의 월든 호수가 호젓하듯이 격정과 걱정은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자는 우리의 태평가 앞에서 누그러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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