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머리를 맞대어
파멸의 연쇄반응을
멈추게 할 순 없을까

정재우 대표가족행복학교
정재우 대표
가족행복학교

모처럼 극장가를 들썩이는 걸작이 상영되고 있다. 크리스토프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이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전기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두 마디를 폰에 저장했다. “오피의 고뇌”, “파멸의 연쇄반응”. 왜 이 두 마디를 메모로 남겼는지 영화를 본 후 곱씹었다. 오피는 오펜하이머의 애칭이다. 그는 물리학자이자 양자역학을 발전시킨 원자핵 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최초로 원자핵폭탄을 만드는 데 성공하여 태평양전쟁을 종식하는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훗날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그는 매국노로 낙인이 찍혀 청문회 자리에 섰다. 영웅에서 추락해 뭇사람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보다 먼저 원자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미국은 3000여 명의 과학자들을 모아 ‘맨해튼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즉, 원자핵폭탄을 만들려고 했다. 이때 과학자들을 지휘하는 리더로 오펜하이머가 선택되었다. 그는 군대가 철저한 보안을 담당해 주는 가운데 도시로부터 격리 폐쇄된 일정한 공간에서 연구와 실험에 몰두한다. 우여곡절 끝에 실험에 성공하고 실전에 원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다. 전쟁은 한순간에 끝나고 말았다. 핵무기가 인류의 역사를 전후로 가르는 계기가 된 것이다.

오피의 고뇌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전쟁은 이겼지만 핵무기로 인한 대량 살상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죄책감이 자신을 괴롭혔다. 선한 목적으로 핵무기를 만들었으나 이제는 핵무기가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지구적 운명이 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반전주의자로 핵무기 개발 반대론자로의 길에 서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공산주의자로 몰려 청문회에 서게 된다. 이때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는 평생 자신의 행적으로 인해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이런 고뇌에 빠진 자를 빗대어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를 연상시킨다고 보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고 그 형벌로 쇠사슬에 묶여 가슴을 쪼이게 된다. 오피도 이런 고뇌의 심장을 쪼이는 형벌을 받은 것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동일한 고뇌에 빠져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으나 이런 문명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 파멸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오피의 고뇌는 개인적 고뇌요 동시에 세계 운명공동체의 고뇌이다. 오피가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만났을 때 던진 탄식이 아직도 머리에 맴돌고 있다. “알버트, 파멸의 연쇄반응이... 이미 시작된 것 같아요” 지구는 매일 기후 위기로 일어나고 있는 천재지변에 속수무책이다. 첨단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인간의 감성과 같은 반응을 하는 AI의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메가톤급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다. 우리는 타의적으로든 혹은 자의적으로든 파멸의 임계점에 근접하고 있다.

그러기에 오피의 고뇌가 우리의 고뇌이다. 모든 시대의 고뇌가 곧 오피의 고뇌일 터. 이제라도 인간의 머리를 맞대어 파멸의 연쇄반응을 멈추게 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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