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엔 반드시 벌초하면서
조상의 깊은 가르침을
마음속에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권혁찬 전 회장평택문인협회
권혁찬 전 회장
평택문인협회

벌초란 간결하게 말하자면 풀을 벤다는 뜻이다. 더 정확히 이르자면 풀을 쳐 없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치고 들어가 정벌한다는 의미의 칠 벌伐 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곧 친다는 의미는 또한 벤다는 의미와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낫이나 예초기 등 도구를 이용하여 치듯이 풀을 베어 버린다는 것이다. 순순히 순리대로 조금씩 베어 내도 될 것을 왜 구태여 치듯이 베어 버려야 하는지 의미가 궁금하다. 아마도 우리가 그토록 숭상하여 모시는 조상의 묘역 근처에 무차별적으로 난생한 잡초들은 그 괘씸 성을 참작하여 후려치듯 베어 버려야 한다는 강력한 의미가 내포된 단어인 듯하다. 또 다른 의미의 풀베기란 예초刈草란 뜻도 있다. 풀을 요리조리 잘 잘라서 유용함과 무용함을 가려 잘 정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도 구태여 벌초伐草란 다소 강력한 단어를 공공연하면서도 매우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데는 각별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해의 가장 풍요한 계절 가을이 오면 우리는 팔월 한가위라 하여 음력 8월 15일 보름을 맞이해 추석 명절을 쇠고 있다. 가을의 가장 성대한 저녁이란 의미일 것을 안다. 그리하여 추석을 앞두고는 조상 묘역을 찾아 벌초하여 성역처럼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벌초 행사이다. 누구누구를 막론하고 조상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연중행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대가족 시대가 희미해지고 핵가족 시대로 접어들면서 가족과 가정의 의미가 상당 부분 퇴색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나 이전에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조상의 존재가 무색해지는 아이러니한 세상이 전개되는 듯하여 상당히 혼란스럽기도 하다. 나의 뿌리는 조상이라는 핵심적 가치가 혼미해지는 불미스러운 반유교적 행태가 만연해 가고 있어 매우 심려스럽기도 하다.

우리를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렀던 과거와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그 뿌리가 변함이 없다. 다시 말해 우리의 근본을 지켜온 핵심적 맥락은 충효의 정신을 일깨워 온 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확언이기도 하다. 종교의 구분으로 유학의 근본을 겸하여 논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천하면서 서양 문명의 새로운 질서가 우리 동양 문명과 접목이 되면서 많은 변혁을 초래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급격한 문화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것을 상당 부분 놓쳐가고 있음이 크나큰 문제이다. 그리하여 우리 영혼 속 조상의 유전자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것을 버리고는 남의 것이 절대로 우리 것이 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매년 추석을 앞두고 행해지는 벌초 행렬을 보면서 역시 우리는 조상의 영혼과 얼을 확실하게 이어받은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에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벌초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초가 아닌 벌초의 의미를 깊이 새기며 행여라도 단순한 풀베기가 아니라 우리의 뿌리인 조상의 묘역에 잡초 하나라도 의미 없이 자생하게 하는 것은 현존하는 후손들의 직무 유기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이번 추석엔 반드시 벌초하면서 조상의 깊은 가르침을 마음속에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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