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제도, 절차를 만들고
실행하는 분들이
책무를 방기하지 말고 나설 차례

김태연 주민평택시 오성면 양교리
김태연 주민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에 산지 올해로 17년째다. 평화롭기만 할 것 같은 농촌 생활 한편에는 민원과 투쟁의 역사가 있다. 마을 건너편 오래된 돼지 축사 밀집 지역의 분뇨 악취 때문에 마을 주민들과 함께 시청에 관리·감독과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을 수도 없이 넣었다. 옆 마을에 건축폐기물공장이 들어온다고 해서 주민들이 비대위를 꾸리고 반대운동도 했었다. 돈사 바로 옆으로 폐플라스틱을 녹여 재활용하는 공장 4개가 한 번에 들어온 적도 있다. 업주는 주민 피해가 없게 하겠다는 각서까지 썼지만, 요즘에도 플라스틱을 태우는 냄새가 난다. 심지어 축사 옆에는 유독화학물질 보관창고까지 들어와 있다.

양교리 오봉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에 공장이 보인다. 오봉산 중심으로 반경 2~3㎞에 레미콘공장, 각종 폐기물처리공장, 화학물질을 취급하거나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크고 작은 공장들이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말 그대로 난개발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올해 ‘평택시 갈등유발 예상시설 사전고지 조례’ 시행으로 시설의 인허가 신청 정보가 사전 고지되어 어떤 업종이 어디에 들어오려고 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지난 3월 열린 평택시 도시계획심의에서 양교리 레미콘공장 이전 설립이 부결됐다. 1년여 동안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농촌지역의 난개발 현실을 알리고 환경유해시설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며 한 목소리로 싸운 결과였다. 그런데 이달 초, 같은 업체가 같은 위치에 레미콘공장을 재신청했다는 고지문을 전달받았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심의 결과를 뒤엎고 시 행정을 무시하는 행태다. 평택시는 주민의견서를 다시 제출하라고 한다. 평범한 일상을 반납한 채, 스무 살 젊은이부터 백발의 팔십 어른까지, 십여 개 마을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똘똘 뭉쳐 외쳤다. 얼마나 어떻게 더 반대를 부르짖어야 시 행정에 반영되는 것인가?

비단 우리 마을뿐만이 아니다. 평택 서부 5개 읍·면에 갈등유발예상시설 신청이 잦다고 한다. 도심에서 기피하는 유해시설이 인구수 적은 농촌지역으로 몰리는 것이다. 양교리 레미콘공장도 브레인시티 개발로 이전 설립을 신청했다. 마을 어른이 “브레인시티에 사는 똑똑한 사람들은 먼지 마시면 안 되고 못 배우고 힘없는 시골 사람들은 먼지 먹어도 되느냐”고 울분을 토하셨던 기억이 난다.

‘세계 반도체 수도’를 꿈꾸는 평택시는 60만 인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 뉴스에서 평택시가 인구 50만 이상 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합계출산율이 1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대한민국의 암울한 출생률 통계를 고려하면 평택시의 미래는 표면적으로 아주 밝아 보인다. 다만, 그 발전과 성장이 농촌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지 않은지, 서부지역의 불균형을 해소할 방안은 무엇인지, 농촌에 사는 주민으로서 평택시에 묻고 싶다. 농촌의 난개발, 지역 불균형, 농촌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까지 제정됐다. 이제, 시민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법과 제도, 절차를 만들고 실행하는 분들이 그 책무를 방기하지 말고 나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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