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알아 가면서 사상이 닮아가는
자연스러운 그릇처럼
‘무지무욕’으로 빚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유영희 시인
유영희 시인

모처럼 세친구가 만났다. 물류에서 십 년이 넘게 일을 한 대가로 허리협착증을 얻은 친구는 통증에 입술도 갈라지고 얼굴은 퉁퉁 부어 윤기도 잃었다. 서로 위로하며 사는 생이라 시간을 맞춰 다른 친구의 꽃밭에 꽃구경을 갔다. 우리 모임의 명칭은 ‘꽃노리’이고 꽃밭 주인장도 꽃과 나무 박사이니 안내와 더불어 세세한 설명은 덤이다.

송탄 외곽에 지은 이층 공장 건물 뒤는 야산이 깎여 붉은 토사에 살아남은 잡목들이 꼿꼿하고 빈 공터에는 코스모스, 황국, 메마른 와송, 대추나무와 포도나무, 석류, 서양 봉숭아인 임파첸스와 이미 자신의 자리를 떠나 바삭거리는 수국, 작약을 비롯해 듣고도 셀 수 없는 다양한 수종을 다 기억하기 어려웠다.

사방에 친 녹색 휀스를 타고 영춘화가 오르고 앙증스러운 애플 수박이 바닥에 누워 응석을 부린다. ‘어린 날의 재미’라는 꽃말을 가진 풍선초가 사방에 꽈리와 같은 씨방을 달고 누런색으로 변하고 있다. 그 옆에는 유홍초가 붉은빛 사력을 다해 피어있고, 떼죽, 불두화, 꺾어서 물에 담그면 뿌리가 나오는 동남아꽃인 보랏빛 루엘리아가 남아 여려지는 여름 정원을 밝혀준다. 정원의 시간표를 보니 꽃을 사랑하는 친구의 맘이 유순하다. 

오늘은 <노자와 21세기> 노자의 무지에 대한 부분을 읽고 있었다. 노자가 말하는 무지는 ‘lgnorance 무지’를 뜻하는 게 아니다. p159 “인간이 무관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무관심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불필요한 지식에 오염되지 않은 영혼의 순결함(purity), 그리고 인격의 소박함, 생활의 단순함(Simplicity), 순결, 소박, 단순 이런 것을, 무지무욕”으로 부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감성주의자기에 그것과 관련된 소품이나 작품을 귀히 선물하려고 한 적이 있다. 충격적이게도 상대는 자기는 그림 선물을 사양한다고 했다. 그림을 싫어하기도 하고 벽에 걸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내 안에서 삭제된 그가 누구인지 이젠 희미하다.

점심시간이면 땡볕에서 풀을 뽑는 재미에 관해 이야기한다. 돼지감자가 심어진 뒤꼍으로 가면서 풀덤불에 발을 쿵쿵거리며 지나간다. 여기저기 덤불 안 독 오른 가을 뱀들이 우글거려 “나 지나가니 그리 알아 달라”는 신호를 미리 준다는 것이라 한다. 식물과 자연의 벗들은 요즘 말로 자연의 철학자들은 서로 상호 무서움보다 배려로 살아감에 마음이 깊어진다.

친구의 꽃밭을 다녀온 후로 없는 꽃밭이 아롱거린다. 마당이 없으니, 흙이 없으니 있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일이다. 친구가 손으로 하나씩 만지며 설명해 준 잎과 꽃 모양, 색깔, 향기, 열매, 식용의 유무가 첨삭지도를 받은 듯 받아둔 씨앗만 만져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친구는 꽃밭의 작은 일월초나 꽃기린같이 작은 꽃잎 모양 옷을 입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친구는 세상에 없을 거라며 허리 아픈 친구와 턱을 괴고 앉아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란 두 사람의 신체에 사는 하나의 영혼이다”라고 했다. 세 사람의 신체라고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오래 알아 가면서 사상이 닮아가는 자연스러운 그릇처럼 ‘무지무욕’으로 빚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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