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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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사서평택시립 팽성도서관
김정은 사서
평택시립 팽성도서관

누군가와의 이별이든 아는 이의 죽음이든 돌이킬 수 없는 존재의 부재든 삶의 한순간 한순간에는 늘 상실과 슬픔이 존재한다. 그것을 통과하는 그 순간의 나에게 작가가 건네는 안부,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안부, 이 책은 그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곳곳에 등장하는 루이제 린저의 문장처럼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그 순간에 우리가 우리에게 건네는 눈부신 안부들에 대해서 말이다.

“Alles ist noch unentschieden. Man kann werden, was man will.”

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1994년 도시가스 폭발 사고로 언니를 잃은 해미는 동생 해나, 엄마와 함께 파독 간호사인 행자 이모가 있는 독일로 떠난다. 괜찮은 척 거짓말로 채워지던 일상은 파독 간호사 이모들과 한수와 레나를 만나며 서서히 회복되어 간다. 한수의 엄마인 선자 이모가 뇌종양에 걸리자 선자 이모의 평생소원, 일기 속 첫사랑 K.H.를 추적한다. 하지만 IMF가 터지며 해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K.H.는 여전히 비밀 속에 남는다. 훌쩍 커버린 한국의 해미는 헝가리 출신 사진작가의 전시회장에서 우연히 우재를 만나며 다시 K.H.를 찾기로 한다.

해나는 상실 이후의 시간-선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쳇바퀴를 돌 듯 같은 자리를 맴도는 길(p.227)-을 떠나간 독일에서도 돌아온 한국에서도 아직 다 보내지 못했다. 거짓말하는 게 싫어서 소설을 쓰지 않으며(p.146) 가까워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 거리 안으로 사람을 들이지 않고(p.220) 한 때는 뜨겁고 또 애틋했으나 결국엔 비슷한 말로 원망하며 나를 홀로 밤 속에 버려두고 간 사람들(p.262)에 우재를 투영하면서, 누구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일 뿐인(p.263) 상실 이후의 시간을 그렇게 걷고 걸었다. 한국을 찾은 행자이모와 보낸 며칠의 밤과, 없는 경조사를 핑계로 제주에서 서울로 오곤 하던 우재가 아니었다면, 다시 찾지 않았을 K.H.를 드디어 만나고 마주하면서, 비로소 해나는 곁의 사람들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제주도행 비행기 안에서 우재에게.

“안녕, 그동안 잘 지냈지? 나는 지금 막 도착했어.”라고(p.309)

이 책은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한 안부, 그 눈부심에 관한 이야기이자 다시금 안부를 건넬 수 있다는 믿음, 치유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실에 휘청이고 있는 당신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마음, 소설의 중심을 관통하는 작가의 안부를 마지막으로 인용하며 이야기를 접는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사람은 희망을 보지. 그리고 희망이 있는 자리엔 뜻밖의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잖니. (중략) 나를 위해 너의 편지를 전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며칠 더 살 수 있게 했듯이,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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