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로 한국 사회가 빠르게 붕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 속도가 유럽에서 페스트로 사망한 사람보다 빠르게 감소할 전망이라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저출산이 가져오는 문제는 비단 아이를 적게 낳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불러일으킨다. 노동력 감소로 경제가 흔들리고, 고령자들을 부양할 인력이 줄어들게 된다. 젊은이들은 유럽에서처럼 통상적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만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가족으로 인정해 달라는 새로운 사회적 제도를 요구하기도 한다. 

저출산으로 일할 사람들이 줄어들어 외국인들로 노동력을 채울 경우, 그들에 관한 권리보장에서부터 의료, 복지, 사회 시스템 전반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이 변화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그렇게 노동력을 채운다고 해도 점점 더 그들의 비중이 커지면 국가적 존립의 문제에서 나라에 큰 위기가 생겼을 때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로 하나가 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가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저출산 문제는 비단 아이를 안 낳는 문제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이를 낳지 않는 원인을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찾아야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젊은이들이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고 누군가를 책임지길 두려워한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예전 우리나라는 대가족제도에서 살아갔다. 아이들은 조부모가 있는 집안에서 아이들이 자랐고 그 아이가 결혼해서 또 아이를 낳아 4대가 함께 사는 일도 흔했다. 조부모와 부모, 손자녀가 한곳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별도로 자신의 역사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역사를 확인한다는 것은 자신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이 없음을 의미한다. 특히 그 조부모의 부모나 조부모까지도 제사라는 의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웠고 마을에 나가서도 자신의 이름보다 오히려 누구네 집 손자녀라는 이야기를 더 자주 들었다. 역사를 확인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곳에서 노인은 집안의 가장 높은 어른이자 지혜로운 사람이었고 무슨 일이 생겨도 지혜를 나눠주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아이들은 형제자매가 많으니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든든함을 느꼈다. 밖에 나갔다가 울고 들어오기라도 하면 형제자매가 총출동해 문제를 해결하러 나서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집 밖에서는 마음껏 뛰어놀며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스스로 익혔다. 굳이 놀이기구가 마련되지 않아도 돌멩이나 모래, 꽃잎, 나무, 시냇가, 자연환경 등은 훌륭한 놀잇감이 되었고 그것들을 스스로 찾아서 즐기곤 했다. 문학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주변에 널린 것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가족들은 아이들이 집안에만 있으면 오히려 밖에 나가 놀라고 등 떠밀곤 했으니 아이들은 아무리 추워도 코를 흘리면서도 추운 날에도 밖에 나가서 친구들을 불러 모아 뛰어놀곤 했다. 

집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철학을 배웠다. 효와 예절이 으뜸이었고 효나 예절을 실천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배웠고,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며 자랐다. 또한 농사를 짓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도 자연의 이치를 가르쳤다. 인간은 늘 자연의 일부로 존재했고 그것을 거스르면 인간의 미래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야말로 인문학적 토양이 풍부한 환경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조부모는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존재가 되었고 형제자매 없이 혼자만 자라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학원으로 향해야 하고 살아가면서 불안하거나 궁금한 것들은 떠도는 이야기가 남발하는 인터넷에 의존해야만 한다. 표현법은 미디어라는 한정된 곳에서만 가능해졌고 도덕이나 윤리는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었으며 대학에서조차 기초학문이 사라지면서 인문학을 배울 기회도 사라졌다. 

청년세대는 중장년 세대가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고, 중장년 세대는 청년세대가 자신들의 젊은 시절과는 다르다며 혀를 끌끌 찬다. 서로를 이해하거나 이해받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청년들의 현재와 미래는 더 불안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불안은 누군가를 책임지는 행위를 거부하고 철저히 개인에게 집중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저출산 문제는 이제 그냥 뉴스에만 등장하거나 학자들의 발표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실이 되었다. 누군가는 다시 우리 사회에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도록 해야만 하는 역사적인 기로에 서 있다. 단순히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해서 해결되는 시기는 지났다. 지금부터라도 인간을 조금 더 연구하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에 기초해서 해결점을 찾아야만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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