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평택시가
괴태곶봉수대 복원,
발굴, 봉수 재연과
박물관 건립 등에 앞장서야

전명수 위원장서평택환경위원회
전명수 위원장
서평택환경위원회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괴태곶봉수대 아랫마을에 토착민으로 13대째 사는 필자에게는 단골 소풍 장소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땔감용 나무를 구하러 다닌 잊을 수 없는 장소가 괴태곶봉수대이다. 봉수대의 의미와 존재는 2000년 전국적으로 새천년 해맞이 열풍이 불면서 본격적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2005년 12월 31일 ‘고려~조선시대 봉수제도의 운영과 괴태곶봉수대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김주홍 박사를 초청해 기남방송, 평택문화원과 함께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주요 내용은 고려시대 때 축조된 호국 유적 평택 괴태곶봉수가 1985년 평택시향토문화재 제1호로 지정됐지만, 발굴조사조차 못 하고 방치돼 있다는 점이었다.

남양만과 아산만이 한눈에 조망되는 위치에 자리 잡은 이 봉수는 해발 83m의 야트막한 구릉 정상을 삭토해 이중 구조로 조성했는데, 경기도박물관은 정밀지표조사를 통해 하단 전체둘레가 239m, 상단 138m로 국내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조사팀은 내부 시설로 봉수를 올리던 연조 4개, 옛 군사의 건물지 1개, 출입시설 3개도 확인했다. 봉수 주변에서는 항만개발 당시 삼국시대 초기 조개무덤과 생선뼈무늬, 파도문 기와 조각도 발견됐다. 특히 삼국시대 토기와 고려 광종 7년(965년)에 해당하는 ‘건덕 3년’이란 글귀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된 괴태곶봉수는 삼국시대부터 거주 문화가 발달했으며, 중요 군사요충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발제자 김주홍 한국토지박물관 학예사는 “다른 지역 봉수는 한곳의 신호를 받아 전달하는데, 괴태곶봉수는 두 곳에서 올라온 신호를 받아 한양으로 응했던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로, 이곳에 주둔한 봉수군도 100명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즉, 괴태곶봉수는 제5노선 연변봉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운영됐던 곳이다. 김주홍 학예사는 직산 망해산 봉수를 거쳐 북상하는 직봉과 전북 옥구의 화산에서 갈라져 보령, 서산, 당진을 거쳐 올라온 간봉과 만나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백종오 충주대 교수는 “괴태곶봉수의 종합적인 정비계획이 시급하다. 해군기지가 들어설 때 유적 일부가 원형을 잃었는데, 더 이상의 훼손은 막아야 한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는 괴태곶봉수대를 많은 분에게 알리고 해군2함대 철책 안에 있는 봉수 유적을 군사보호구역에서 제외하기 위해 LH의 지원으로 원정초등학교 앞에 괴태곶봉수대 공원을 조성하고, 2021년부터 ‘괴태곶봉수대되찾기안전대책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해 많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앞서 복원된 봉수대인 천림산, 대림산, 창택산 봉수대 답사와 백승종 교수의 연구 발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국방문화유산으로서 해군의 인식 전환을 유도하고, 수도사 오도성지, 괴태목장과 홍원목장 감목관 복원, 봉수유적박물관 등 괴태곶문화권역으로의 복원과 발굴을 추진해 왔다.

지난 11월 22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괴태곶봉수대의 앞날을 축하한다. 이제 국가에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지난 1985년 3월 5일 평택시향토문화재 제1호로 지정됐던 괴태곶봉수의 의미를 되살려 경기도와 평택시가 복원, 발굴, 봉수 재연과 박물관 건립 등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