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박석수가
문학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우대식 시인박석수기념사업회장
우대식 시인
박석수기념사업회장

지난 11월 25일 문인 박석수의 시비가 지산초록도서관 옆 공원에 세워졌다. 박석수를 문인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그가 시만 쓴 것이 아니라 소설에서도 큰 문학적 성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해 출간 박석수 전집 4권 <대화와 수화>는 일명 콩트라는 장르로 일상에서 빚어지는 촌철살인의 미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문학 장르의 전방위에서 활동한 박석수의 고향이 이곳 평택이라는 것은 지역적으로 매우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일이다. 그동안 고향에서는 박석수를 잊고 살았다. 평택은 전국 지자체 가운데 앞으로 특례시로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로 성장해 왔다. 외형적 성장만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고 평택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떠한 정신적 가치를 내세우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럴 즈음 세워진 박석수의 시비는 평택 문화의 새로운 시금석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박석수 시비를 작업한 작가는 조각가 구성호이다. 그는 독립기념관에 세워진 안재홍 선생의 비를 제작한 작가이며 탁월한 미학적 안목을 가진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시비를 세우기 전 박석수의 작품 세계에 깊숙이 빠져 지냈다. 그리고 그가 들고나온 것이 쑥돌의 이미지였다. 과문한 필자는 관리의 편의성을 들어 오석을 선호했으나 구성호는 화강암의 우리말이 쑥돌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찾아보니 70년대까지 쓰던 우리말이었다. 석굴암, 첨성대, 다보탑, 석가탑, 덕수궁 석조전, 독립문 등 우리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이 쑥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한 쑥돌과  박석수의 작품 쑥고개의 이미지는 음운적 유사성과 함께 수난 속에서 지켜낸 민족의 생명성까지 매우 잘 어우러지는 것이었다.

평택시문화재단의 지원에 힘입어 시비 제작을 계획하면서 여러 시비를 둘러보았다. 많은 시비가 돌에 글자를 채워놓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만약 정신이 빠진 돌의 글씨라면 굳이 세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였다. 또한 염두에 둔 것은 평택시 내에 근현대 시인의 시비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섭섭하다고 느꼈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우후죽순의 시비가 난립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박석수의 시비가 앞으로 평택에 세워질 시비의 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각가 구성호와 여러 협의를 거쳐 완성에 이르게 되었다.

문인 박석수의 시비가 세워진 것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제 그가 문학의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자신이 디딘 세계를 투명한 정신으로 그려낸 한 작가가 진정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가슴 벅찬 일이다. 그의 시비에서 송탄시외버스터미널 쪽을 바라보면 250m 지점에 그의 생가가 남아 있다. 펌프를 켜올려 콩나물을 키우며 별을 바라보던 그의 생가는 비워진 채 낡아 가고 있다. 

이제 시민들은 공원을 지나며 박석수의 시비를 마주할 것이고 시를 읽고 혹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는 우리의 과거에 마주할 터이다. 그러나 그 과거야말로 우리의 삶이었으며 우리 후손들이 기름진 토양 위에 살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는 사실을 육성의 목소리로 듣게 되었을 때 박석수의 문학은 진정으로 우리 곁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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