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처럼
누군가에게 특별한 추억의 소리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정선영 사서교사현화초등학교
정선영 사서
교사현화초등학교

도서관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에서 남학생이 창가에서 책을 본다. 하얀 커튼 사이로 바람이 분다. 책에 집중한 얼굴이 보였다 사라지는 모습. 영화를 본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창가에 기대서서 책 한 권 읽고 싶은 설렘을 간직하고 있다.

국민디자인단 참여를 제안받고 다른 지역의 도서관이 궁금해졌다. 도서관 투어가 있는 전주에 가보기로 했다. 전주는 도서관과 책방이 인구 대비 제일 많은 도시다. 추천받은 도서관은 모두 8곳. 1박 2일 코스로 동선을 짜는데 도서관이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이동이 편했다.

연꽃과 한옥의 연화정도서관, 도서관 안에 미술관을 운영하던 금암도서관, 온통 시집만 꽂혀있던 학산숲속시집도서관, 12~16세 트윈 세대들의 공간으로 대통령상을 받은 전주시립도서관, 국내외 아트북으로 눈길을 끌었던 다가여행자도서관, 감각적인 색채와 예술적인 공간으로 마음을 사로잡았던 서학예술마을도서관. 모두 주변 지역 또는 자연과 어우러진 건물이었다. 하나둘씩 완성한 시민들의 작품이 꾸준히 모이고 잘 정리되어 있어 감동했다. 

평택시도서관 국민디자인단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외국인, 어린이, 노년.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나는 어린이 그룹에 참여했다. 도서관의 핵심 역할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설과 자원에 관해 이야기한다. 개관하는 도서관이 어떤 특색을 지녔으면 좋겠는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모든 의견을 반영할 수는 없지만, 다양하게 사고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바라는 도서관은 ‘문턱이 낮은’ 도서관이다. 올해 3년째 ‘올해의 책’ 시민선정단을 하면서 사회적 약자인 아이, 장애인, 이민자 등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되었다. 어른은 자가용 등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는 도서관이 아이들에겐 그렇지 못하다. 도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쉬운 곳, 도서관을 이용하는 데 큰마음을 먹지 않아도 되는 곳, 자신의 힘으로 다닐 수 있는 곳.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을 도서관에서 더 자주, 더 많이 보고 싶어졌다. 

더불어 다양한 연령층이 놀이와 문화, 학습이 충분히 어우러지는 곳. 학원과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학생들, 육아 또는 직장으로 틈이 없는 사람들에게 쉼과 여유를 줄 수 있는 허브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함께 성장할 것이다.

‘도서관은 이럴 것이다’ 틀에 박힌 생각을 깨는 도서관. 누구나 오고 싶고, 자꾸만 생각나는 곳. 책과 함께 누군가를 떠올리며 함께 이야기가 하고 싶어지는 장소였으면 좋겠다. 입소문을 타고 이용자에게 사랑받는 도서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겨울이 오니 밤이 길어졌다. 이불 덮고 누워 책을 보고 있으니 창문 넘어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어린 시절, 어느 겨울의 기억으로 날 데려간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도서관은 어떤 소리로 가득해질까? 어떤 다정한 소음이 들리게 될까? 내가 기억하는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처럼 누군가에게 특별한 추억의 소리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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