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지어주신 내 어린 시절 별명은 ‘책벌레’ ‘안방마님’이었다. 밖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방안에서 책 읽는 딸이 보기 좋으셨던지 별명을 부르는 목소리에서 뿌듯함이 묻어나오곤 했다. 혼자 쓰는 방도 없었고 가난해서 맘껏 책을 사서 보지 못했기에 어머니가 사 주신 국내외 위인전기를 읽고 또 읽으며 시간을 보냈던 어린 시절이었다. 

지금은 마음껏 책을 사서 볼 수 있게 되었는데도 책을 읽는 양은 해마다 점점 줄어든다. 읽기보다는 책장에 꽂아만 두고 언젠가는 읽을 것이라 위안하면서 그저 바라보며 흐뭇해한다. 그리고 그 책들은 오랫동안 부채 의식으로 남는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그런 사람을 찾기 어렵다. 책을 들었던 손에는 이제 핸드폰이 들려 있고 책을 읽다가 잠시 고개를 들고 먼 산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던 모습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참 서글픈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시인이자 소설가로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지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이다. 보르헤스는 30대에 이미 약시로 고통을 받았고 도서관장을 맡았을 때는 이미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그는 “천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정원을 생각하거나 궁전을 생각하겠지만 나는 항상 천국을 도서관과 같은 곳이라고 상상했다”고 말할 정도로 책을 사랑했고 책들의 집인 도서관을 사랑했다. 그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열여섯 살 소년은 예순다섯 살의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고 대화를 나누면서 작가의 꿈을 키워갔다. 그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편집자이자 작가로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이라는 책을 쓴 알베르토 망구엘이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책을 읽는 방법은 돈을 주고 사서 읽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당시 영국에서 출판되던 책은 고급 양장본으로 서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가격이 비쌌다. 빌리는 것조차도 경제력이나 자격을 갖춘 소수 특권층에게만 허용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민들이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든 시초가 바로 ‘펭귄북스’다. 작고, 가볍고, 휴대하기 좋게 만든 책, 책을 안 보는 사람은 있어도 못 보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출판업자 앨런 레인의 뜻을 담아 만든 종이 표지로 된 가벼운 책은 애거사 크리스티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을 담아내 첫해에 300만 부 이상 팔린 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책은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는 책의 소명을 일깨운 출판업자의 노력으로 영국인들은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책을 사랑한 유명한 인물이 있다. 조선시대 학자이자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이덕무는 소문난 책벌레였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책을 사지는 못했어도 그가 읽은 책은 거의 2만 권이 넘었고 직접 베낀 책도 수백 권에 달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굶주린 자식들을 위해 집에 있던 유일한 책 <맹자>를 팔아 곡식을 샀다. 그리고는 “내게는 책 한 질도 허락될 수 없는 사치였는가”하며 몹시 서글퍼 했다. 굶는 자식들을 바라볼 수 없어 목숨처럼 아끼던 책을 내놓은 그의 심정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책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대상이기도 했고,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도 했으며, 때로는 인간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표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은 그나마도 읽고 쓰는 일에서 배제되었다. 1888년 여성을 위한 근대학교가 설립되기도 했지만, 여성과 독서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물론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만큼 책은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았고 지금도 여전히 책이 가진 존재의 특별함은 여전하게 느껴진다. 

지난해 일본의 한 헌책방에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선생의 1980년 초판본 <한국미, 한국의 마음>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 많은 헌책 중에서 유독 빛을 발하던 그 책을 사서 품에 안고 나오는 마음은 마치 독립운동가의 유해를 모셔 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건 아마도 책이 가진 특별함, 그리고 책 안에 담긴 저자의 순정한 마음이 내게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많은 사람이 책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책의 위상을 믿는 것은 단순히 그곳에서 정보를 얻기 때문만은 아니다. 책에서는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사색이 있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깊이 있게 하기 때문이다. 

1938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고서점에서 2천여 권의 책을 한화 50만 원 정도에 산 것을 통탄해하던 작가 안드레아 케르베이커는 <책의 자서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아직 줄 수 있는 게 많다. 나와 만나 달라진 이들에게 홀로 품어보는 기대. 닿고 떠난 모든 이들이 나를 잊지 않기를, 수 세기가 지난 후에도 살아있는 책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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