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경 등 11인/월급사실주의
김의경 등 11인/월급사실주의

 

이인경 사서평택시립 안중도서관
이인경 사서
평택시립 안중도서관

어스름한 새벽, 졸린 눈을 비비며 이른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 버스정류장은 남들보다 빨리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로 북적인다. 이름이 크게 새겨진 형광색 작업복에 묵직한 작업화를 신고 쪽잠을 청하는 아저씨, 수첩을 펼쳐 들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학생, 버스 시간이 자꾸 지연된다며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아줌마와 이 요란한 풍경까지 쓸어 담아 버리겠다는 듯 연신 빗질을 해대는 미화원 아저씨까지. 대낮처럼 활기 넘치는 새벽 풍경 속 사람들은 나만 빼고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문학 동인 ‘월급사실주의’가 밤낮없이 24시간 쉴 새 없이 달리는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열정페이 현실을 담은 단편집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를 펴냈다. 총 11편으로 구성된 이 단편집은 삼각김밥 공장의 아르바이트생부터 고령의 근로자, 학습지 교사, 배달 라이더, 통번역가, 기간제 교사, 학생 근로자 등 전쟁 치를 듯 하루를 살아내는 이웃들을 소재로 이 시대 결코 쉽지 않은 노동 현장과 중산층의 삶을 사실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김의경 ‘순간접착제’) 일하던 마카롱 가게의 경기가 안 좋아지자 삼각김밥 공장으로 아르바이트를 옮겼다. 연일 계속되는 작업은 힘이 들고 엄청난 손놀림을 자랑하는 일흔의 할머니 동료(?)의 등장은 긴장감을 더한다. (서유미 ‘밤의 벤치’) 수업일 변경을 간절히 요청하는 학습지 교사의 청을 거절한 경진. 사실 그녀 또한 과거 학습지 교사였다.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알기에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주원규 ‘카스트 에이지’) 오늘도 지하철에서 쪽잠을 청하며 오더를 기다리는 태양. 이제 겨우 20살인 그는 배달 라이더다. 어디 등 붙이고 잘 곳은 없을까? 잠시 고민해 보지만 오늘도 그의 잠자리는 지하철 벤치. (임성순 ‘기초를 닦습니다’) 윤 소장은 직접 집을 짓고 싶어 건축을 전공했다. 그러나 꿈은 꿈일 때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는 오늘도 건설 현장에서 실체 없는 도면과 싸워가며 누락되는 공정에도 한쪽 눈을 감으며 괴로워한다.

첫 장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를 통해 장강명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위로의 노래가 필요한 순간이 있고 사이렌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지금 새로운 재난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중략)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고통에 대해서는 쓸 수 있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에 담긴 11편의 소설과 함께 이 시대 노동 현실을 경고하는 사이렌 소리에 귀 기울이고,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동료의, 친구의, 가족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해 줄 수 있길 바란다.

‘서유미의 밤의 벤치’

새로운 수업을 권유했고 수업을 그만두겠다는, 돈이 아깝다는 얘기도 들었다. 선생님이지만 집까지 학습지를 배달하는 사람이었고 영업을 못 해서 수업이 줄어들면 눈치가 보이고 월급이 줄었다. 보람과 모욕이 하나의 그릇 안에서 녹아내렸다.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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