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어제보다 한결 따뜻해졌다. 며칠 전에는 마당 한쪽에 수선화를 심었고, 어제는 새로 만든 화단에 글라디올러스를 심었다. 수선화와 글라디올러스는 모두 작년에 심었던 알뿌리를 캐서 말려둔 것이다. 작년에 예쁘게 핀 노란 수선화를 보며 가슴이 설렜고 그것들이 모두 시들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내년을 기약했던 터였다. 

올해는 특별히 글라디올러스를 위해 격자무늬 흰색 울타리 앞에 좁고 긴 화단을 만들었다. 키가 큰 글라디올러스는 아마도 그 울타리를 지지대 삼아 줄줄이 꽃을 피우며 존재감을 뽐낼 것이다. 채소를 심을 화단도 겨우내 언 땅을 갈아엎어 부드럽게 해두고, 포도나무 줄기도 정리하고, 뒤꼍에 퇴비도 넉넉하게 마련해 쌓아두고 나니 어느 정도 봄을 맞을 준비가 된 것 같다. 땅을 갈아엎다가 겨울잠 자던 개구리도 대면했고, 쌓아두었던 퇴비 포대 아래에서 미동도 없이 웅크리고 있는 살진 굼벵이와도 조우하는 행운도 있었다.  

화단에는 어느새 작약이 땅 위로 빨갛게 입술을 내밀었고, 제일 먼저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도 이번 주면 아마도 꽃잎을 활짝 펼쳐 마당을 노란빛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봄부터 시작되는 풀과의 기나긴 전쟁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 풍요로운 행복이 있으니 그런 것들은 그래도 감내할 만하다.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뿐”이라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처럼 모든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면 족하다. 

학창 시절 열심히 외웠던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도 등장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지금처럼 봄의 계절에, 장미와 더불어 떠올리기 가장 좋은 낭만적인 시인의 대명사다. 그는 <말테의 수기> <두이노의 비가> 등 고독, 슬픔, 사랑, 죽음의 시를 썼던 시인…, 아니 그보다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이라는 낭만적인 기억으로 더 유명한 시인이다. 

사실 릴케의 사인은 그가 백혈병에 걸린 줄 모르고 있었을 때 연인을 위해 장미를 꺾다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죽은 것이니 사망 원인을 따진다면 패혈증보다는 백혈병에 가깝다. 그러나 그의 묘비명에 적힌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라는 문장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그렇게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릴케를 떠올리면 동시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그와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다. 철학자 니체가 청혼했을 만큼 지적이고 매력적인 루 살로메는 외부 세계와의 접촉에 미숙했던 릴케에게 현실적인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이자 정신적인 후원자였다. 릴케는 루 살로메가 쓴 에세이를 읽고 그의 독자가 되어 그녀에게 편지를 썼고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 공부했고, 함께 여행을 떠났으며 특히 루 살로메는 릴케에게 러시아 문학을 소개해 그의 성장을 도왔다. 

루 살로메와 사랑에 빠졌던 릴케는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 내용은 1903년부터 1908년까지 어느 시인 지망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어려운 것에 집착해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어려운 것을 극복해야 자신의 고유함을 지닐 수 있습니다. 고독한 것은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아마도 내가 알기에 그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고 다른 모든 행위는 그 준비 과정에 불과합니다. 젊은이들은 모든 일에 초보자이기 때문에 아직 제대로 사랑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배워야 합니다. 모든 존재를 바쳐 외롭고 수줍고 두근대는 가슴으로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초기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합일, 조화가 아닙니다. 사랑은 우선 홀로 성숙해지고 나서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릴케의 말대로라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을 배워야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가 자기만의 고유함을 지녀야 하고, 홀로 성숙해야 하며,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이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만 한다. 사랑은 저절로 습득되는 게 아니라 배워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사랑이 일회성 물건처럼 쉽게 얻고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만큼 고유함을 지닌 성숙한 존재들이 사라졌다는 의미도 된다. 

봄이다. 봄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봄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떠올린다. 릴케는 루 살로메에게서 사랑을 배웠을지 모르지만 나는 마당에 핀 꽃들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저마다 고유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하나의 완벽한 세계로 존재하는 꽃, 완벽한 하나의 세계로 존재하기 위해 겨우내 자신의 고유함을 씨앗에 간직하고 긴 겨울을 버틴 꽃, 릴케의 말처럼 ‘사랑하고 사랑받기 충분한’ 그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나는 봄이 무르익기도 전에 벌써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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