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림/창비
나혜림/창비

 

차산이시민도서선정단
차산이
시민도서선정단

책을 처음 집어 들면 표지의 네 잎 클로버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슬프게도 책의 주인공 정인은 네 잎 클로버의 이미지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주변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고,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의 잘못된 일들을 어쩔 수 없이 묵인하고,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삶. 정인의 잎사귀는 네 개가 안 되는 것 같고, 세상은 그런 그에게 불친절하다. 그런데 그런 정인의 눈앞에 악마 헬렐이 나타난다.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행운 같은 유혹을 한아름 안고서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 ‘만약에’라는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만약에’ 이런 선택을 했다면. ‘만약에’ 그 상황을 그냥 넘겼다면. ‘만약에’ 저런 걸 가지게 된다면.

한번 가정해 보자. ‘만약에’ 어느 날 내 인생에 악마가 나타나서, 바라는 걸 모두 이뤄주겠다고 하면 어떨까? 어떤 고난도 없이 성취와 쾌락을 누릴 수 있다면? 사악한 존재를 허용하고, 그 힘을 조금 빌리는 것만으로 특별한 무엇이 될 수 있다면? 악마 헬렐은 정인에게 말한다. “만약에, 그 한마디면 신세계를 맛볼 수 있어. 선택은 인간이 하는 거야.” 

이 유혹적인 제안 앞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우연히 발견한 네 잎 클로버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을 거절할 수 있을까?

헬렐은 현대화가 아주 잘 된 악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위한 맞춤형 제안을 내놓는다. 돈과 명예, 무제한 와이파이, 바퀴벌레와 평생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삶 등등. 하나같이 탐나는 것이지만, 정인은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악마의 말을 꼬박꼬박 재치 있게 받아친다. 자기 삶에 그다지 만족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간단히 행복한 ‘만약에’를 선택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주어진 현실을 살아보려고 한다. 

사실, ‘행운’이라는 꽃말을 가지는 것은 네 잎 클로버뿐만이 아니다. 세 잎 클로버도, 다섯 잎 클로버도, 만 개의 잎을 가진 클로버도 모두 ‘행운’이다. 왜냐하면 ‘행운’은 ‘잎말’이 아니라 ‘꽃말’이기 때문이다. 몇 개의 잎이 달리든, 같은 꽃이 피어난다면 모두 ‘행운’이다.

그런데 세상은 미처 꽃이 피어나기도 전에 우리의 잎사귀만을 보고 우리의 가치를 단정 짓곤 한다. 그렇게 우리를 수많은 ‘만약에’로 내몬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같은 무의미한 생각을 곱씹게 한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작중에서 정인의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신다. “만약에를 백 번 해도 네가 있어야지.” 정인은 결국 거친 세상 속에서도 꿋꿋이 제 꽃을 피워 내려고 한다. ‘만약에’ 때문에 스스로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정말 중요한 건 그런 것이지 않을까? 눈앞에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또 살아가는 것.

앞으로 이 책을 읽게 될 모든 이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이 책이 위로와 응원이 되었으면 한다. ‘만약에’를 생각하게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어진 삶을 한 번만 더, 충실하게 살아보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럴 수 있는 힘을 얻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모두가, 세상이 때때로 우리에게 다정하지 않더라도, 꿋꿋이 제 꽃을 피워내기를 바란다. 잎의 개수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모두 행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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