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감에
한편의 동화를 쓴
축복의 시간을
영원히 잊지 못 할 것이다

유영희 시인
유영희 시인

안데르센은 “모든 사람의 인생은 신의 손으로 쓰인 한편의 동화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을 아끼며 꺼내볼 때면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그리 아름답고 소중할 수 없다. 최근 내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감격에 벅찬 경험으로 가슴이 뛴다. 생생한 그날의 일을 꼭 들려주고 싶다.

늦은 퇴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옷 가게에서 차 한 잔을 권하여 마시는 도중 그녀가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조카가 퇴근하다가 주차장 자동차 옆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얼굴 아래부터 꼬리, 발까지 한쪽 몸이 쥐 끈끈이에 붙어 살려달라는 듯 소리치는 고양이를 외면하지 못해 이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일은 처음이기에 망설였지만 젊은 청년의 착한 마음씨에 일단 데려와 보라고 했다.

늦은 시간이라 병원은 생각도 못 하고 그냥 이대로 두면 죽을 게 분명하여 발만 동동 구르던 차에 인터넷으로 상황을 검색해 보니 식용유로 제거가 된다는 경험자의 사례가 있었다. 마침 집이 가까워 반쯤 남은 식용유를 가지고 와서 시도를 해보았다. 길고양이답게 하악질이 심하고 버둥거려 난감했지만 발부터 식용유를 살살 묻혀 손을 넣어 제거했다. 마치 수술을 하는 집도의執刀醫처럼 섬세하고 침착하게 오로지 살려보겠다는 마음에만 집중해 다리 부분을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곧 2차 작업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버둥대는 고양이를 잡고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손끝으로 조금씩 식용유를 밀어 넣어 팔과 등을 분리하는 감격을 안았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할퀴어 손 곳곳이 긁히고 찍혔지만 아이를 살리겠다는 의지만 남아있었다. 

겨드랑이 같이 무른 부분이 난제였다. 과연 이게 될까, 의심은 들었지만 조금만 힘을 내자며 속도를 내어 끈기 있게 조심조심 긁어내려 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밤이 이슥하다 느낄 때 기적이 일어났다. A4용지 크기의 끈끈이가 그 작은 몸에서 마법처럼 떨어져 나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미치도록 감격스러운 일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아직 작은 검불들이 많이 붙어있어 남은 일도 장난 아니겠지만 일단 최고의 큰 숙제를 해결한 기쁨은 “아, 이제 살겠구나”라는 숭고한 암시였다. 

열한 시가 훌쩍 넘어가고 손의 상처가 깊어 그동안 연락이 된 캣맘과 캣대디 두 분이 다음 작업을 위해 달려왔다. 뒷일을 부탁하고 요동치는 벅찬 감정으로 집에 와서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고양이 상황이 궁금해 가보니 “언니 고양이 살아났어요, 고양이 꼴이 되었어요”라며 그녀 또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상자를 가리켰다. 애가 얼마나 활발하게 통통 튀는지 모른다며 새벽 두 시가 넘도록 만졌다고 한다. 뚜껑을 열고 맑고 까만 쥐눈이콩 같은 눈이 반짝이는 아기 고양이를 보니 눈물이 나왔다. 털 한 가닥 올올이 빗질한 듯 깨끗한 고양이가 거기에 있었다.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한 생명을 살렸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感慨無量이다. 그리고 하루를 더 재워 엄마 고양이가 있을 원래 살던 곳에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사람이 놓은 덫에 무고한 지구 동거인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있었지만, 사람의 손에 구조되어 더욱 무량하다. 인생도감에 한편의 동화를 쓴 축복의 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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