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진/민음사
이혁진/민음사

 

임미애시민도서선정단
임미애
시민도서선정단

작가 이혁진은 2016년 장편소설 <누운 배>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전작 <사랑의 이해>가 있다. <관리자들>은 민음사에서 펴낸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32권에 수록되었다.

이 책 <관리자들>은 거의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산업재해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제목이 <관리자들>인 이유는 작가가 가진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노동 현장에 내몰리는 사람들은 ‘세상은 여기저기 함수가 틀린 엑셀 표 같은 것. 어떤 칸에서는 아무리 올바른 숫자를 넣어도 에러라고 뜰 수밖에 없는(28p)’ 경우다.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잘 아는 사람이 이 소설에서는 소장이다. 이 소설 속에서 소장은 갑을 대표하는 위인으로 그려진다. 선길의 죽음 이후 ‘산 사람한테 착할지 죽은 사람한테 착할지 관리라는 걸 하다 보면 그런 선택을 안 할 수 없거든(152p)’이라고 말하면서 선길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운다. 그리고 같은 선택을 하도록 주변의 을들을 종용한다.

그러나 동료인 을들 중에서 나름으로 뚝심 있다는 사람도 ‘이걸 이렇게 해도 되나?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지만 시키니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할 수밖에 없었다. (85p)’라는 자기 회피로 모든 사건을 목격했음에도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며 입을 다물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유태인을 수용소에 가두고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도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던 사람들을 향해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함’이라고 말한다. 

소설 <관리자들>은 읽는 내내 혹독한 겨울 날씨 탓에 마스크에서 새어 나온 입김이 얼어붙는 일터에서 바람막이조차 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유쾌하지 않다. 이 고장 평택에서 한창 공사 중인 여러 현장의 이야기일 것 같기도 하다. 소장이 오물을 뒤집어쓰고 식당이 부서진 걸로 소설이 막을 내리면서 다소 후반부의 시원한 결말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런데도 서 기사가 중장비를 몰고 가면서 옆에 태운 개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생명의 숨을 어루만지는 장면에서 생명이 살아있음의 작은 희망을 말하고 싶다. 희망은 언제나 희박했다. 경제개발과 성장의 그늘에 가려서 밀려났던 ’인간 존엄‘, ’공정한 분배’, ‘존중받는 삶’을 되찾아야 함을 작가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갑이라 착각하는 소장도 사실은 알고 보면 대기업에서 하도급, 재아래도급을 받은 업체의 소장이 아닐까 한다.  진정한 갑은 착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 돈이 돈을 벌게 하면서 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드라마에나 존재한다. 현실 속에 사는 을들의 싸움을 부추기며 을들이 닿지 못할 딴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너무 심한 비약인가? 하도급을 용인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도 있고, 답도 있을 것이다. 다만 옳지 못한 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 현장과 사회에 만연한 갑과 을의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작가의 말을 전한다. 갑에 대한 비난만으로는 달라지지 않으니 이제 을들의 싸움에서 벗어나서 내가, 우리가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되묻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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