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더불어 살려고 직장·명예 다 내려놓았죠”

 

 
마음이 지쳐있다면 이곳엘 가자. 하루 종일 귀를 파고드는 소음들과 정신없이 돌아가는 빠른 속도 속에서 문득 나 혼자만 뒤처지는 것 같아 마음이 허허로울 때면 이곳엘 가자. 오래 전 뜨거웠던 청춘과 함께 했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금껏 앞만 보며 달려온 시간들에 작은 쉼표 하나 찍을 수 있는 곳, 바로 서정동에 있는 LP음악 전문 카페 ‘블루노트’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묻던 삶의 가치
“어릴 적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베토벤 교향곡을 듣게 됐죠. 그때부터 음악에 관한 동경이 시작되었어요. 살기 힘들던 시절이라 음악을 마음껏 향유할 수는 없었지만요.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꾸준히 LP판을 사 모았죠. 한 30년 동안 한 장 한 장 모으다 보니 꽤 많은 양이 되더라구요. 직장에 다닐 때도 음악에 대한 애착은 점점 커졌죠. 늘 제 자신에게 되물었어요.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인가’ 하구요. 결국 전 안정된 직장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과 더불어 살아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죠. 2006년에 이 카페를 시작했으니까 벌써 한 6년 정도 되었네요”
김중일(53) 대표는 평탄한 직장을 버린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서울의 소위 잘나가는 제조회사에서 재무 총괄을 도맡아 하던 능력 있는 직장인이 40대 중반에 모든 걸 다 내려놓기란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날개가 퇴화하기 전에 비상해보고 싶었어요. 돈이야 죽을 때 싸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요 뭐. 아내를 설득했는데 다행히 아내가 제 마음을 이해해주었어요. 후회는 안 해요. 옛날보다 생각이 더 유연해지고 마음의 여유도 훨씬 많이 생겼는걸요”
그가 운영하는 블루노트에는 30년 이상 모아온 LP판 들이 거의 새것처럼 잘 보존돼 어떤 오래된 음악이라도 최상의 깨끗한 음질로 들을 수 있다.

음악+여유, 더 많은 인생을 배워
“직장 다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요. 그분들은 제게 더 많은 인생의 경험들을 나눠주시죠. 단골로 찾아주시는 분들이 대부분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공감대가 많아요. 그분들과 오랫동안 이야기 나누는 것도 즐거운 일이에요”
블루노트를 찾는 고객들은 40~60대가 대부분이다. 카페에는 올드팝이나 로큰롤, 블루스, 포크가요, 칸소네, 탱고, 샹송, 심지어 클래식까지 두루 구비하고 있으며 일부는 옛 공연장면을 영상으로도 볼 수 있어 손님들은 눈과 귀가 즐겁다.
인터뷰가 있던 날, 김 대표는 기자가 좋아하는 포르투칼 민속음악인 파두를 들려주었다. 흔치 않은 음악이라 혹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물어봤는데 어느새 다량의 파두 음반을 꺼내 늘어 놓는다. 이어 파두의 장르와 계보를 얘기하더니 파두의 대표적인 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와 현재 파두를 잇고 있는 마리쨔 등 가수 계보까지 들려준다.
“마리쨔 음반은 외국 사이트에서 며칠씩 걸려 직접 구입한 거예요. 1집부터 현재 나온 것까지 다 있지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한을 담아 끓어오르는 파두의 창법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도 많이 비슷한 것 같아서 제가 좋아하는 음악 중 하나예요”
음악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는 그의 눈동자가 행복으로 빛난다. 음악은 듣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음악에 관한 한 전문가의 수준을 넘어 이미 즐기는 수준에 이른 듯 보였다. 

문학과 시를 향유할 줄 아는 음악애호가
“예전엔 백석과 김수영을 좋아했어요. 요즘 나오는 시 중에는 문태준 시인의 시가 좋더라구요. 교훈을 담은 시 말고 독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느낌 있는 시가 좋아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문학을 향유하는 건 좋아하거든요”
음악에 대해서만 잘 아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문학까지 막힘이 없다.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기자에게 김 대표는 음악이든 인생이든 정해진 대로만 가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고 되물으며 크게 웃는다. 자신은 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모든 예술은 맥이 통하는 만큼 음악 외에 많은 것들을 함께 즐기며 사는 것뿐이라고.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어느새 오래 묵은 차를 마시는 듯 여백이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많은 것들을 내려놓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훈장 같은 것이 아닐까.
현대의 빠른 변화와 속도로 인해 자칫 마음이 허허로워지기 쉬운 이웃들에게 오래된 음악들을 들려주며 마음의 여유를 갖게 만드는 블루노트, 그곳에는 우리가 잊기 쉬운 삶의 여유와 향기가 진하게 녹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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