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다가오는 봄은
해고 노동자에게도
재래시장 상인에게도
묵묵히 농사짓는 농민에게도
공평하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상식이 통하는
함께 사는 세상이다

어느덧 우리들 곁으로 새로운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봄이 시작되면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가 녹고 앙상했던 가지에 새로운 생명의 싹이 돋아난다.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와 매서운 바람을 견뎌내기 위해 잠시 멈춰있거나 주춤했던 생명 활동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들 곁을 무심히 떠나고 있는 겨울은 사람이나 자연이나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힘든 계절이었다. 그래서 힘든 시기를 지나 새로 맞이하는 봄은 우리들 모두에게 희망과 활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농촌의 들녘은 그 어느 곳보다 먼저 봄을 맞이한다. 얼었던 대지가 꿈틀거리고 작은 숨소리를 내며 봄기운을 피워낸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준비를 한다. 이 시기 우리 농부들의 거친 손이 바빠진다. 한 해 농사를 계획하며 씨앗을 준비하고 다시 깨어난 들판을 어루만진다. 고단한 노동이 다시금 시작되지만 기쁨으로 맞으며 희망을 품어본다.
그런데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작년 한해 감자·고추·배추·콩… 대부분의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며 종자 값도 건지지 못한 농사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올해는 무엇을 심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거기에다가 올 해는 쌀 수입개방 재협상이 진행되는 해이다. 우리 농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쌀농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벌써부터 정부는 쌀을 관세화로 전면개방 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우리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어느새 농민들의 깊이 팬 주름살을 어루만지며 들녘을 지나온 봄은 재래시장 할머니의 바구니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파릇파릇한 봄동 배추가 싱싱하게 웃으며 지나가는 주부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어느 하우스에서 자랐겠지만 작은 바구니에 담긴 향긋한 냉이가 군침을 돌게 한다. 어느 틈에 벌써 재래시장에 향기로운 봄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냉이를 다듬는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인 즉은 대형마트가 여러 개나 있는 평택에 이마트 2호점이 또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마트 1호점과 떨어진 거리가 불과 4km밖에 되지 않은 곳에 1호점 두 배 규모의 2호점을 짓겠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 평택 생활권이나 다름없는 경부고속도로 안성 톨게이트 옆에 스포츠 레저기능이 포함된 이마트 초대형 복합쇼핑몰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전통적 가치와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담당하고 있는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에 닥친 어려움은 심각할 것이며 지역경제가 붕괴될 것이다. 이 어찌 재래시장 상인들만의 문제인가?
어머니의 들녘을 지나고 재래시장 할머니의 손끝을 지나온 봄이 젊은 노동자의 단단한 주먹에 다다랐다. 얼마 전 공장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투쟁하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법원이 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다. 너무도 늦었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재판부는 “2009년 정리해고 당시 쌍용자동차에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유동성 위기를 넘어 구조적이고 계속적인 위기가 있었는지는 증거상 분명치 않다”고 판단했다.
또한 정리해고의 근거로 쌍용자동차가 내세운 2008년 회계보고서의 문제도 지적했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회사는 대법원에 상고장을 내고 자신들의 해고를 정당화 하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다시 한 번 호소하고 있다. 더 이상 해고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고 대화로 풀자고, 회사가 기본 입장과 태도를 바꿔 교섭으로 문제를 풀자고 호소하고 있다.
봄을 대표하는 노란 개나리꽃의 꽃말이 ‘희망’ 이라고 한다. 봄은 희망의 계절이다. 새롭게 다가오는 봄은 공장으로 돌아가고픈 해고 노동자에게, 상생을 외치며 거대 재벌 대형마트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그리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땅의 진리를 믿고 묵묵히 농사짓는 농민들에게도 공평하게 희망을 전해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상식이 통하는 함께 사는 세상이 아닌가 다시금 생각해 본다.

 
이상규 정책실장
평택농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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