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이 정도인데
영문도 모른 채
죽어나갔던 녀석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사람과 닭이, 아니 모든
동물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이제부터라도 이런 고민을
우리 모두가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아픈 내 손을
불끈 쥐게 만들었다

 

봄볕이 무척이나 따뜻했던 지난 3월 7일 금요일 오후 1시 35분 내 핸드폰에 날아온 문자 전문이다. 드디어 내 차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월 17일 고창에서 최초로 발생했던 AI 조류인플루엔자가 평택에도 발생했다. 벌써 많은 공무원들이 더 이상의 AI확산을 막기 위해 살처분에 투입되어 땀을 흘리고 있다.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토요일에 약속됐던 일정들을 하나하나 취소했다.
토요일 아침 8시 30분 시청 대회의실은 벌써 많은 동료 공무원들로 북적였다. 접수대에 비치된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아서 서명을 했다. 독감예방백신을 맞기 위해 체온을 쟀다. 정상체온 36.5℃보다 약간 높은 37.0℃,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몇몇 동료들은 감기 등으로 체온이 37.5℃를 초과하여 바로 귀가 조치되기도 했다. 대회의실에서 부시장님의 당부말씀과 AI살처분 시 인체감염을 막기 위한 상세한 안전교육을 받고 방역장비를 지급받았다. 당일 투입된 공무원은 120여명, 대형버스 3대에 나뉘어 청북면 현지로 출발했다.
현장에 투입되면 살처분이 완료될 때까지 밖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오전 10시 30분 해장국으로 이른 점심을 먹었다. 힘든 작업을 해야 하니 든든하게 먹어두라며 축수산과 직원들이 식당 안을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밤낮 계속된 격무로 까칠하고 피곤함이 배어있는 얼굴이었다. 요즘 너무 고생하신다며 답례인사를 했다. 하지만 AI 살처분까지 동료 직원들을 동원하게 돼 담당부서 직원으로서 너무 미안하다며 오히려 손사래를 쳤다. 요즘 제일 고생이 많은 축수산과 직원들, 같은 농업 관련 공무원으로서 너무나 안타깝고 미안했다.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열심히 작업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현장에 도착해 방역복으로 갈아고 장화에 덧신까지 껴 신었다. 고무장갑에 방진마스크를 하고 고글까지 착용하자 숨이 턱 막혀왔다. 계사 3동에 사육중인 중닭 9만 7000여 마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축수산과 직원으로부터 작업요령에 대하여 상세한 교육을 받았다. 여자 직원들은 닭 사료를 폐기하는 일을 맡고 남자 직원들은 3개조로 나뉘어 계사로 투입됐다.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방역복을 입고 내 앞을 지나갔다. 착잡함과 당혹스러움이 배어있는 얼굴표정과 축 쳐진 어깨가 지금 이 불편한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계사에 들어서는 순간 알싸한 홍어냄새가 방진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어두컴컴한 계사 안에는 수만 마리의 닭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벼이삭처럼 사람들을 피해서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이 녀석들을 오늘 모두 땅에 묻어야 한다는 생각에 순간 마음이 짠해지며 고글 앞이 뽀얗게 변했다. 직원들 모두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들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래도 시골 출신인 나는 어릴 적 소·돼지·염소·개·닭·토끼 등을 키우면서 닭 모가지도 비틀어보고, 토끼 가죽도 벗겨봤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스스로 생명을 거두는 것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누군가가 “빨리 빨리 시작합시다”라는 말을 했다. 그때서야 “아 내가 공무원이구나, 이 녀석들도 불쌍하지만 다른 닭들에게 전염을 막으려면 지금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해야 되는구나”하는 의무감이 내 생각과 내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는 마치 초식 공룡을 사냥하는 냉혹한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닭들을 잡아 마대에 집어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나와 같은 하얀색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들이 많이 있었다. 중간에 시장님께서 간식으로 가져오신 햄버거를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6시간이 넘도록 우리 티라노사우루스들은 정말 손끝이 아프도록 닭들을 사냥했다. 하늘이 어둑해질 무렵 우리의 사냥은 끝이 났다. 텅 빈 계사 안을 둘러보며 나는 얼마 전까지 이곳에서 모이를 쪼아대던 녀석들을 이 세상보다 좋은 곳으로 보내달라며 세상 모든 신들에게 기원했다. 드디어 내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그제야 온몸이 땀으로 절여져 있고 방역복이 온통 흙과 오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오는 버스 안, 열 손가락 모든 손끝이 욱신거렸고 온 몸이 뻐근했다. 사람이 이 정도인데 영문도 모른 채 죽어나갔던 녀석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사람과 닭이, 아니 모든 동물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이제부터라도 이런 고민을 우리 모두가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아픈 내 손을 불끈 쥐게 만들었다. 그렇게 AI 살처분 비상근무명령은 완벽하게 수행됐다.

 

 
이우진 지도기획담당
평택시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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