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사라지면 결국 사람도 사라진다

2차선 도로에 늘어선
플라타너스 나무를 그대로 두고
길을 넓혀 4차선 도로로 만든 다음
새 길 한쪽에는 100년 앞을 내다보고
어린 플라타너스 나무를 심었습니다.
청주로 들어가는
프라타너스 가로수길.
여전히 전국 제일의 아름다운 길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1960년 10월 23일 일요일 이른 아침. 다음 날이 월요일이긴 하지만 마침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UN-데이’였기에 친구네 집으로 놀러가기 위해 조치원에서 기차를 내려서는 16인승 합승을 타고 청주를 향해서 가던 길.
이미 추수가 시작된 황금들에는 앞을 분간할 수 없도록 짙은 안개가 자욱한데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늘어진 나뭇가지가 자연스럽게 터널을 이룬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을 만났던 기억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으면서 어느 좋은 곳을 가보아도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만났던 청주 가로수길을 덮을 만한 아름다운 풍경은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산엘 다녔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산이 좋아 혼자 산엘 다녔습니다. 일요일 아침 집에서 혼자 주물 주물 샌드위치를 하나 만들어서는 등산용 ‘쌕’에다 집어넣고는 시내버스를 타고 도봉산이거나 수락산 아니면 불암산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상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속하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공돌이 공순이’ 라고 부르는 산업일꾼들이 늘어나면서 젊음을 발산시킬 여가생활을 위해 값이 싼 등산이 붐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말이면 웬만한 산에는 발들여 놓을 틈이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 산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함께 즐기기 위한 산행이었기에 사람들은 산에는 오를 생각도 하지 않고 산 중턱에서 석유버너를 켜고는 삼겹살에 소주를 흠뻑 마시는 야유회를 즐겼습니다. 자연히 산은 오염되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물이 흐르던 시냇가 돌 틈에는 파랑색 비닐봉투나 검정비닐봉투가 너울거리고 심지어는 여기저기서 개犬를 잡기도 했습니다.
행락객에 늘어나면서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넓히며 자연은 금세 훼손되었습니다. 산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사람들은 죽어가는 산과 나무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안식년 제도를 정했습니다. 뒤늦게나마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신 한광여고 이원재 목사님과는 자전거 하이킹을 즐겼습니다. 꼭 멀리가야 즐거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달리는 자동차를 피해 한줄로 이어서 가느라 오직 앞만 보고 페달을 밟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자주 다니지 않아 서로 마주보며 나란히 페달을 밟을 수 있는 길이면 어디든 즐거웠습니다.
학교 교문 앞에서 만나 재랭이고개로 해서 천혜보육원 앞을 지나고 청룡말 입구를 지나는 플라타너스 길은 봄이면 봄대로 가을이면 가을만큼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원곡을 지나 칠곡저수지에 앉아서 잠시 쉬고는 고개 넘어 양성으로 향했습니다. 원곡 플라타너스 길은 사람만 다니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이른 새벽 자전거를 타고 원곡길을 달리면 족제비와 오소리를 자주 만났습니다. 일요일이면 동네 아이들은 논물을 대는 수로에서 물고기를 잡았고 여름밤에는 이른 저녁을 먹고는 걸어 걸어서 천혜보육원 앞을 지나 길을 걸으면 길 숲에서는 반딧불이가 밤하늘에 별똥별처럼 날아다니는 플라타너스 길은 생태공원이었습니다.
5월 눈송이처럼 흩날리며 하얗게 바람에 지던 배꽃길. 경상도에서는 ‘길’을 ‘질’이라고 부릅니다. ‘질’은 생명이 들고나는 길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어머니입니다. 맨 처음 이 지구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길을 만들었습니다.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 길을 만들었습니다. 길은 곧 생명입니다 사람을 무시하면 사람이 모이지 않듯 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넓은 길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자연이 죽으면 인간도 살 수 없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남의 셋방에 살지언정 자가용 자동차를 먼저 마련하는 생활문화가 되면서 길도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이름난 청주 플라타너스 가로수길도 늘어나는 자동차를 감당하기에 벅찬 길이 되면서 사람들은 경부고속도로에서 청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 양쪽으로 늘어선 1500그루가 넘는 플라타너스를 없애고 자동차 전용도로를 만들자는 여론이 비등했습니다. 출퇴근 시간 길이 한 번 막히기 시작하면 6Km 가로수길을 벗어나는 데만 1시간씩 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낭만이고 나발이고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은 정말 짜증나는 길이 되었습니다.
시민들의 불평이 폭등했습니다. 갑론을박, 길에 대한 실용성과 길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내세우는 주장은 시간이 가도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참고 기다린 결과 결국 자연보호가 이겼습니다. 그리하여 2차선 도로에 늘어선 플라타너스 나무를 그대로 두고 길을 넓혀 4차선 도로로 만든 다음 새 길 한쪽에는 100년 앞을 내다보고 어린 플라타너스 나무를 심었습니다.
청주로 들어가는 프라타너스 가로수길 여전히 전국 제일의 아름다운 길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100년, 1000년을 자란 나무를 베어내는 일은 순식간에 끝이 납니다. 1960년대 벌어진 ‘새마을운동’으로 이 땅에서 자라던 천년 고목들은 그렇게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 베어버린 나무는 영영 돌아오지 않습니다. 길도, 문화도 사람도 다르지 않을 것이지요. 우리도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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