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역 철도부지 광장에서 개최
서정리보통학교 우승, 퍼레이드

 
“진위군청의 주최와 진위청년회의 후원으로 평택, 안중, 서정리, 봉남, 심소연합대운동회는 지난 3일 평택역전 광장에서 열리었는데, 각 교에서 출진한 남녀 아동 1천5백여 명에 달하였고, 정각에 이르러 회장 최익하 씨의 개회사가 마치자 아동의 경기는 도보경주로 비롯하여 순서대로 진행하여 결국 우승기는 서정리공보교로 돌아갔으며, 뒤를 이어 진위청년단의 도보 자전거방식 경주 재미있는 경기와 내빈 중 청북리 일신강습원의 경주가 필한 후 오후 4시 반에 폐회하였다고.”(『동아일보』 1924년 6월 6일)
운동회는 근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운동회라는 개념은 한말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일본에서 최초의 운동회는 1874년 ‘경투유희회(競鬪遊戱會)’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135미터 달리기를 비롯하여 도움닫기 멀리뛰기·3단 뛰기·공 던지기 등의 경기가 치러졌다. 이후 각종 운동회가 초등·중등·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이러한 운동회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한말이었다. 우리의 경우도 각종 경기를 통해 운동회가 개최되었다. 평택에서도 운동회는 학교가 설립되면서 개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도 학교 단위뿐만 아니라 연합운동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1924년 6월 3일 개최한 진위군 관내 보통학교 연합대운동회는 진위군청에서 주최하고 진위청년회가 후원했다. 운동회에 참여한 학교는 평택보통학교·심상소학교·안중보통학교·서정리보통학교·봉남보통학교·진위청년회·평택소년회 등 6개 학교와 소년단체에서 참여하였다. 당시 운동회를 할 운동장은 평택역 철도 부지 광장을 사용하였는데, 운동회에 앞서 진위청년회원들이 3일 동안 정리를 했다.
당일 운동회에는 학교별로 오색기를 내세우며 입장한 25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하였고, 관중은 무려 3만여 명이 참석했다. 오전 9시 정각에 시작된 운동회는 진위군수 최익하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각종 경기가 이어졌다. 오후 4시에 마친 대운동회는 서정리보통학교가 우승기를 차지했으며, 우승기를 앞세우고 시내 한 바퀴를 돌았다. 정규 경기 외에도 진위청년회의 자전거경주·일신강습원생의 경기도 곁들여졌다. 운동회 경비는 모두 230원이 소요되었는데, 진위군청에서 60원·진위청년회에서 40원·상인연합회에 60원·평택보통학교 학부모회에서 30원·일본인 측에서 40원을 각각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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