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없는 사법부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차선의 가치로 삼아온 국방부의
태도와 입장이 상식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피해의 대가는
오롯이 국민들 몫이 될 것이다
미군기지 이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전문적이고 책임 있게 처리할
부서와 담당 공무원을 시급히
설치하고 배정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재판권을 포기한 법무부
작년 7월, 오산미공군기지(K-55) 앞 로데오거리에서 주한미군의 주정차 단속에 항의하던 평택시민들이 수갑이 채워진 채 연행당할 뻔 했던 사건이 벌어졌다. 1차 조사기관인 평택경찰서가 피의자 7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에 송치하였지만 검찰은 기소여부를 차일피일 미뤄왔고 그 사이 피의자 전원은 본국으로 출국해 버렸다.
검찰에 송치된 사건의 경우, 피의자들이 출국을 요청하면 검찰의 동의를 받아야만 출국할 수 있기 때문에 ‘검찰은 애초부터 기소할 생각이 없었다’는 비난을 호되게 받아야 했다. 당시 검찰은 ‘7개월이 넘도록 왜 기소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는지?’, ‘출국에 동의해준 판단의 근거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에 대해  ‘수사 중에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 했었다.
사건 직후에는 모든 언론에 보도될 만큼 비중 있는 사건이었지만, 검찰의 늑장 대응으로 여느 사건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뒤늦게 검찰이 불법체포와 감금·폭행 혐의로 기소를 했지만, 이번엔 법무부가 ‘재판권 불행사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재판권 불행사 결정’은 주한미군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유무죄를 따지는 재판권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측은 ‘이 사건이 공무중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재판권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사건은 불평등하다고 말하는 SOFA 한미주둔군지위협정(Status of Forces Agreement)에도 보장하지 않은 행위였기 때문에 주한미군 측에 재판권 행사를 요구했어야 했다.
결국 법무부는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전에 재판권을 포기함으로써 향후 주한미군 범죄 사건 처리에 대해 나쁜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 결국 이런 저(底) 자세로는 날로 증가하고 있는 미군범죄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군범죄가 날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기소율’은 2008년 30.1%에서 2009~2013년 최근 5년 사이에 72.9%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만으로도 법무부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군의 변화에 따른 대책도 없다
지난 3월에는 오산미공군기지 인근도로에서 일본 야무구치현 이와쿠니 미군기지 소속 FA18B 전투기가 착륙 중 2만 3000V의 고압전선을 끊어버리는 대형사고가 발생했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주변 30여 가구에 전기 공급이 중단돼 평택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 사고는 ‘한국지형에 익숙하지 못한 주일미군 전투기 조종사가 인근도로를 활주로로 오인해 벌어진 사고’로 주한(駐韓)미군이 아닌 ‘주일(駐日)미군’이 벌인 사고였기에 이 사고 처리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런데 주한미군이 아닌 주일미군이 어떻게 평택 상공에서 전투기를 조종하는 일이 가능해졌을까?
이것은 2004년도 한·미 양국 간에 합의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은 더 이상 한반도의 붙박이 군대가 아니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어느 나라든 배치될 수 있고 미 본토를 비롯해 타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도 한국에 전환 배치되는 일들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고 직후 국방부에 ‘사고의 원인은 무엇인지?’, ‘재산상의 피해금액은 얼마인지?’,  ‘피해배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타국 주둔 미군사고에 대한 처리지침은 있는지?’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했지만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답한 답변을 들어야했다.
한미 SOFA협정상에는 주한미군의 지위 등에 관해서만 언급되어있기 때문에 이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타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으로 인한 사건·사고에 대한 처리지침을 마련해야 마땅했다.
원칙 없는 ‘사법부’,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차선의 가치로 삼아온 ‘국방부’의 태도와 입장이 ‘상식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그 혹독한 피해의 대가는 오롯이 국민들 몫이 될 것이다. 평택시도 미군의 문제는 국방의 문제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 아닌 ‘국가의 책임’이라는 도식적인 입장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대규모 미군기지 이전을 앞두고 미군과 미군기지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전문적이고 책임 있게 처리할 수 있는 부서와 담당 공무원을 시급히 설치하고 배정해야할 것이다.

 

 
강상원 센터장
평택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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