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희망의 싹을 보려면
젊은 세대들이 확고한 개척정신을 갖고
이 시대, 이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
아집과 이기주의에 몰입되지 말고
유연하게 사회공동체적 인식을 가지고 가야한다

 

 

붉은 노을의 석양을 세례 받은 롯데인벤스 고층아파트의 긴 그림자가 맞은편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삼키고 있는 오후 무렵, 여름 끝자락에서 서성이던 무더위란 깃발이 열섬의 맹위를 펄럭이고 있다. 후끈거리는 열기가 맹위를 떨치는 파라솔 너머 대조적으로 펼쳐진 두 개의 풍경에 발걸음을 멈추고 넌지시 응시하며 보았다.
커다란 항아리형의 화단에 채송화가 피었다. 6~7살짜리 어린 소녀 3명이 그 화단 안에 피어있는 앙증맞은 신선한 채송화 꽃송이를 세고 주의 깊게 관찰하며 중얼거리고 있다. 꽃과 풀 등 주변에 자라고 있는 생명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어린 소녀들과 채송화가 내 눈에서 오버랩 된다.
그 맞은편에 풍경은 너무나 칙칙하다. 원탁에 빙 둘러 앉은 노인 4명이 소주와 맥주잔을 기울인다. 무료한 오후를 축내고 있는 중인가 보다. 고목에서 부서져 나온듯한 쉰 목소리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다. 앞에서 채송화를 바라보며 싱그러운 모습으로 생명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과는 사뭇 차이가 나며 마음의 간격은 그보다 훨씬 멀다. 세상사를 재단하는 것치고는 너무나 파괴적이고 부정적이다. 술기운에 의지한 거친 목소리들은 술 중독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맑은 모습의 생명을 지향하는 어린 소녀들의 밝고 맑은 정서가 너무나 진솔하다. 반면 노인들은 칙칙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불평불만의 자화상을 연신 뱉어내고 있다. 술에 취한 채, 결코 만만치 않았던 자신의 일생을 살아왔던 현실이 어찌 아쉬움과 여운이 없겠는가? 잘 곱씹어보면서 회한이 들 때는 반성하는 자세로 과거를 반추하는 것도 상당히 멋있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시대를 농단하고 있었다. 근거 없이 즉흥적으로 술에 취한 채 이런 말 저런 말을 뒤섞고 핏대까지 올려가며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인들은 세월호가 민생을 말아먹고 있다고 불평불만이다. 걸핏하면 좌파들이 시비를 건다고 한다. 나는 어린 소녀들이 항아리 화단을 빙 돌면서 꽃들과 속삭이는 모습을 눈으로 따라가면서도 귀로는 노인들의 시대농단을 듣고 있었다. ‘유**한테 보상금을 달라고 해야지, 왜 정부에 떼를 쓰는가?’라며 거칠게 항변하고 있다. 핏대 올리는 것이 신이 나는지 술맛이 당기는지 한잔씩 쭈욱 들이킨다.
도대체 ‘민생’이란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하는지 모르겠다. 사전적 의미로 민생이란 ‘일반국민의 생활이나 생계’란 뜻이다. 세월호 사건도 민생의 한 부분이다. 여객선을 타고 우리들은 여행을 가거나 혹은 사업차 그 배를 이용하지 않는가? 게다가 국민들은 해당분야에서 공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요하지 않던가? 한 점 의혹이 없이 밝히겠다는 정부의 최고위가 내놓은 문제 진단과 해결은 무엇인가? 안전한 국민생활을 하도록 시스템변화 촉구를 요구한 것이 어찌 민생이 아니란 말인가? 그 문제가 당리당략으로 흘러가고 정치 쟁점화 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생문제인데, 어떤 논점의 해설뉴스 또는 사설을 봤는지 그 노인들은 민생이 아니라며 불평한다. ‘민생’하면 정치인들이 ‘전통시장’을 활보하는 것쯤으로 인식되어 있는가 보다. 서민들은 고물가에 근심이 늘어가니 이를 해결하는 것이 민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것도 민생이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무고한 학생들이 졸지에 희생당한 사건은 민생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민생보다 더 근원적인 ‘생명’과 직결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임무가 과연 누구한테 있는가?
우리사회에서는 언젠가부터 꽤 오래된 기성세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회조직이 신선하고 우리나라가 희망의 싹을 보려면 젊은 세대들이 확고한 개척정신을 갖고 이 시대, 이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아집과 이기주의에 몰입되지 말고 유연하게 사회공동체적 인식을 가지고 가야한다. 마치 술 취한 듯한 태도나 자포자기 심정으로 생을 살기엔 아직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란 본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다. 제주지검장 문제, 싱크홀 문제. 이 두 사건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들이 딛고 서있는 땅 속이 스트레스를 받아 싱크홀을 야기(惹起)한다. 검사는 우리사회가 만든 법을 적용하는 국가기관인데 검사장의 행동은 분명 제정신이 아니다. 우리사회의 향락과 퇴폐적인 밤 문화가 빚은 결과는 아닐까. 우리사회의 안전 브레이크는 작동하고 있는가. 온통 뇌물로 법 정의가 훼손되어가는 우리의 현실, 정의와 공의는 이렇게 실종되어가고 있다.
항아리 화단에서 채송화를 닮은 어린 소녀들의 해맑은 모습이 너무나 청신하다. 이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안전하고, 편견이 없는 불평등이 사라진 사회를 기필코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 진춘석 교사한광여자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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