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에 올바른 말을 할 ‘어른’이 없다

 

역사는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바로 역사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우며
시민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들은
마음 속 깊이깊이 경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 얽혀 천년만년 살리라
타락한 불교와 괴승 신돈에 의해 기울어 가던 고려를 구하기 위해 성리학을 신봉하던 신진사대부 정몽주와 마주앉아 술잔을 나누던 태종 이방원은 정몽주의 속셈을 알아볼 양으로 넌지시 ‘하여가(何如歌)’를 던졌습니다. 술잔을 들고 가만히 이방원의 싯귀를 듣고 있던 정몽주는 이방원의 유혹에 아랑곳 않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마음을 가다듬고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나는 너희 같은 패거리들과는 함께 할 수 없으니 다시는 나에게 허튼수작을 지껄이지 말아라’ 정몽주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에 추호도 변함이 없음을 ‘단심가(丹心歌)’에 담아 노래하자 앞에 있던 이방원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옳거니 네가 제삿날이 멀지 않았구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몽주는 선죽교 다리 위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 조영규와 고여의 손에 격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1453년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김처선(金處善).
조선임금 단종 때부터 연산군까지 다섯 대에 걸쳐 임금을 보필했고 급기야는 임금을 모시는 내관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임금의 식사 때마다 주방에서 나인들이 만든 ‘수라’에 혹여 독약이 들어있지 않은지 은수저로 임금보다 먼저 먹어볼 수 있었던 상선내관이 되었고 종당에는 인수대비의 병을 고친 공으로 1478년 어느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정2품 자헌대부 당상관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1504년 어느 날 아침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연산군은 자신의 생모였던 폐비 윤 씨가 독약을 받고 죽으며 토한 피 묻은 저고리를 받아듭니다.
이 일이 벌어지면서 그 때까지만 해도 영민한 임금이었던 연산은 하루아침에 폭군으로 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폐비 윤 씨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잡아들여 죽이는 ‘갑자사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동안 죽은 자들은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 죽은 자의 목을 치는 ‘부관참시’까지 저지릅니다. 그러면서 연산군은 나랏일은 아랑곳 않고 매일같이 기생들과 술판을 벌이는 허랑방탕한 세월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감히 임금 앞에 나서서 올바른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연산군은 그것도 모자라 모든 관리들에게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배는 칼’ 이라고 적은 팻말을 목에 걸고 다니게 했습니다.
1505년 4월 1일 아침 궁궐로 입궐을 하며 김처선은 아내와 양자를 불러 자신이 오늘이 이승에서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며 유언을 남깁니다. 하지만 올곧은 김처선의 성미를 아는 아내와 아들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궁궐에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연산군은 이미 아침부터 기생들을 끼고 술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신 김처선 상감께 아뢰오’ 
‘무슨 일이냐?’
‘신 김처선 지금까지 다섯 임금을 모셨으나 일찍이 이처럼 본분을 잃은 임금을 모신 적이 없사옵니다. 어서 술자리를 거두시고 백성을 위하는 국사에 임하소서’
‘뭐라구! 네 이놈! 네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느냐!’
연산군은 곁에 서있던 어영대장의 활을 빼앗아 김처선을 향해 쏘았습니다.
‘상감! 소신의 간청을 물리치지 마옵소서’
‘네 놈이 아직도… 에잇!’
화살을 맞은 김처선은 연산군이 휘두른 칼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우리는 1980년에 일어났던 10·26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듯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때 평택에서 일어난 필화사건 역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어느 시장후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특정한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비방하는 인신공격성 비판이 아니라 평택을 사랑하고 평택의 발전을 위한 순수한 충고요, 지적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일껏 평택 지역주민이 뽑아놓은 시장이 제 임기도 다 마치지 않은 채 중앙 정치무대로 자리를 옮기겠다며 하루아침에 시장 자리를 헌신짝처럼 팽개친 지가 언젠데 다시 평택시장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무책임하고 옳지 않은 처신이었으며 분명 평택시민을 농락하고 모욕하는 처사였지요.
그 시기 뜻있는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시장후보를 비판한 글에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며 시장후보를 비판한 용기와 정의감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시장이 바뀌었지만 사람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이 하나 없다고 비판합니다.
이러한 시기 사람들은 평택 지역사회에 ‘바른말’을 하는 ‘어른’이 계시지 않는 것에 많은 염려를 합니다. 또 믿고 따를 ‘어른’도 흔치 않아 잘못된 일이 반복되는 것에도 큰 걱정을 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불러 모아 평택시민을 위해 일해야 할 시장(市長)이 자신의 주변 인물들 밥그릇이나 챙겨서는 훗날 역사에 큰 죄인이 될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역사는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바로 역사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우며 시민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들은 마음 속 깊이깊이 경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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