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농악 오무동五舞童 ‘곡마단’과 ‘동거리’는
구경꾼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압도적 연희演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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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명맥이 끊어졌지만
우리나라 여느 농악에서 할 수 없는
평택농악만의 전설이 있다.
무동 네 명이 한 줄로 올라서서
4층탑을 쌓는 ‘회초리 사무동’과
곡마단에 앞뒤로 두 명의 무동이 더 올라서는
‘칠무동’이 바로 그것이다.
 
2013년 5월 12일 평택농악마을에서 진행한
‘평택농악 정기발표공연-파일난장굿’에서
‘쌍오무동 곡마단’을 세계 최초로 선보여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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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농악 쌍오무동 곡마단 공연
올 11월말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에서 열리는 ‘제9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에서 신청한 ‘농악’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된다. ‘농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경우 우리나라는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이 첫 등재된 이후 판소리-강릉단오제-강강술래-남사당놀이-영산재-제주칠머리당영등굿-처용무-가곡-대목장-매사냥-줄타기-택견-한산모시짜기-아리랑-김장문화에 이어 국내에서는 17번째, 국제적으로는 88개국 297번째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영예를 안는다. 문화재청이 지난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처음 제출한 농악은 ‘평택농악’을 비롯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6곳과 시·도 지정 무형문화재 14곳 등 모두 20곳의 농악이 동시에 등재 신청됐다. 특히 평택농악은 경기·서울·인천·충청권 전역과 강원 일부지역을 대표하는 웃다리농악으로 전체 인구의 60%인 3100만 명을 아울러 우리나라 농악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평택시사신문>은 두레굿과 걸립굿을 모두 수용해 역동성과 연희성이 뛰어나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있는 평택농악의 역사와 명인·연희·세계화·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발전 과제에 대해 11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세계 최초 쌍오무동 곡마단 선보여
평택농악 ‘무동놀이’는 압도적 기예

▲ 평택농악 정기발표공연 파일난장굿(한국소리터 평택농악마을)
평택농악은 평야지대를 배경으로 한 두레패와 웃다리지역 전체를 넘나들던 전문연희패의 전통을 함께 지니고 있는 복합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평택농악은 마을 두레패 성격보다는 전문연희패 성격이 강하다. 이는 평택농악 예능보유자였던 최은창이 주로 전문연희패에서 활동했다는 점과 평택농악의 구성방식 그리고 구성원의 주요 인맥에서도 나타난다.
웃다리 평택농악은 가락의 종류가 많지 않은 반면 변주가 다양하다. 또한 가락이 빠르고 힘이 있으며 맺고 끊음이 분명한 것을 특징으로 삼는다. 독특한 가락으로는 칠채와 잦은삼채라 불리는 쩍쩍이가 있다.
판굿은 굿패들이 여러 가지 놀이와 진풀이를 순서대로 짜서 갖은 기예를 보여주기 위해 벌이는 풍물놀이다. 웃다리 판굿은 보통 45명 정도로 이루어지는데, 농기와 영기를 앞세우고 호적수가 따르며 그 뒤로 쇠-징-장고-북-법고-무동이 이어진다. 평택농악의 판굿은 진풀이가 다양하고 화려하며 생동감이 넘친다. 당산벌림 대형과 무동놀이가 가장 큰 특징인데 특히 무동놀이에서 보여주는 던질사위·앞뒤곤두·만경창파돛대사위·동거리와 곡마단은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평택농악만의 자랑거리다.
지금은 그 명맥이 끊어졌지만 우리나라 여느 농악에서 할 수 없는 평택농악만의 전설이 있다. 무동 네 명이 한 줄로 올라서서 4층탑을 쌓는 ‘회초리 사무동’과 곡마단에 앞뒤로 두 명의 무동이 더 올라서는 ‘칠무동七舞童’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2013년 5월 12일 한국소리터 평택농악마을에서 진행한 ‘평택농악 정기발표공연’에서 ‘쌍오무동雙五舞童 곡마단’을 세계 최초로 선보여 관람객들에게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했다. 평택농악은 기예와 역동성 면에서는 어떤 농악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재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 평택농악 지신밟기 당굿

정초에 ‘지신밟기’·여름에 ‘두레굿’
겨울에 ‘걸립굿’·단오와 백중에 ‘난장굿’

▲ 평택농악 지신밟기 문굿
평택농악은 정초에 ‘지신밟기’, 여름철에 ‘둥기레’라고 불리는 ‘두레굿’, 겨울철에 ‘걸립굿’에 농악을 크게 쳤고, 초파일에 ‘등대굿’, 단오날과 백중날에는 ‘난장굿’을 쳐왔다.
지신밟기는 정초에 마을의 풍물패가 모여 집집마다 돌면서 풍물을 치고 지신을 밟아주며 고사를 해주고 쌀과 돈을 추렴하는 세시풍속으로 당에 가서 당굿을, 마을의 큰 우물에 가서 샘굿을 치고 집집이 집돌이를 한다. 집굿은 먼저 대문에서 문굿을, 집안 우물에서 샘굿을, 마당에서 마당굿을 친다.
두레굿은 두렛일을 할 때 협동심을 북돋우고 힘든 노동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힘을 내게 하는 역할로 모내기에서 시작돼 세벌 김매기가 끝나는 날까지 행해졌다. 음력 7월 중순 세벌 김매기가 끝나는 백중날은 백중놀이 또는 호미씻이라고 해 마을 공터에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풍물을 치며 푸지게 놀았다. 평택농악 두레굿은 1984년 최은창이 주도해 평택농악보존회에서 처음으로 복원한 후 매년 평택군민의 날 때 백중놀이의 하나로 재연해보였다.
걸립굿은 쇠꾼들이 돈과 쌀을 걷기위해 지신밟기와 같이 집돌이를 하는 것을 말하는데 걸립패에는 걸립하는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촌걸립패와 절걸립패가 가장 흔하다.
촌걸립은 마을 또는 어떤 공동체에서 공동의 기금을 마련하거나 특별한 경비를 모아야 될 목적이 있을 때, 걸립을 통해 다리를 놓거나 소방서 같은 공공건물을 짓기도 하고 심지어 학교를 세우는 일도 했었다.
절걸립은 사찰을 수리하거나 중수하는 등 절에서 쓸 비용마련을 위해 절과 연희패 간에 계약을 맺고 행하는 것으로 ‘연희’보다는 ‘고사’를 위주로 했기 때문에 평택농악 최은창과 같은 이름난 고사꾼들을 필요로 했다. 현재 태고사에는 태고사와 중흥사를 걸립하기 위해 1960년대와 1980년, 1985년 정부 삼부요인을 비롯해 각 부의 장관들이 작성해준 권선문이 남아있으며 이때 평택농악 명인 최은창이 고사꾼으로 참여했다.
난장굿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날 외에 임시로 특별히 열리는 장날에 벌어지는 것을 말한다. 평택지역에서는 주로 명절을 맞아 난장을 텄으니 ‘파일난장’ ‘백중난장’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파일난장을 칠 때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 놀이판 한 쪽에 높다랗게 등대를 세워놓고 굿을 놀아 이를 ‘등대굿’이라 부르기도 했다. 과거 전국 5대 사당패의 하나였던 평택 진위패의 파일난장굿은 그 규모가 인근에서 볼 수 없는 최대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평택농악 판굿 진풀이 생동감 넘쳐
전문연희패 성격상 ‘비나리’ 발달

▲ 평택농악 지신밟기 고사소리
판굿은 굿패들이 여러 가지 놀이와 진풀이를 순서대로 짜서 갖은 기예와 재주를 보여주기 위해 벌이는 것으로 지신밟기나 걸립을 하면서 집집마다 마당씻기로 하던 농악놀이가 확대된 것인데 본격적으로 판굿이 발달한 것은 전문연희패에 의해서라고 볼 수 있다. 평택농악도 일반 관객을 위주로 한 공연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행하는 것이 판굿이다.
평택농악 판굿은 인사굿-돌림법고-당산벌림1-오방진-당산벌림2-사통백이-합동 좌우치기-가새발림-쩍쩍이춤(연풍대)-돌림법고-개인놀이(따법고·장고놀이·상쇠놀이)-버나놀이-무동놀이-열두발 상모놀이(채상놀이)-인사굿 순으로 진행된다.
평택농악의 판굿은 빠르고 힘 있는 가락에 맞추어 진풀이도 생동감이 넘치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다양하게 펼쳐지는 무동놀이인 ‘동리’는 평택농악 판굿의 백미다. 맞동리로 시작하는 무동놀이는 던질사위·삼무동·만경창파 돛대사위·앞뒤곤두가 행해지고 마지막으로 오무동의 곡마단과 동거리로 이어지면서 구경꾼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연희가 펼쳐진다.
평택농악은 결립을 주로 했던 전문연희패의 성격상 ‘고사소리’ 즉 ‘비나리’가 매우 발달돼있다. 평택농악의 예능보유자였던 최은창은 그 시대에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비나리꾼으로 인정받았다. 지신밟기나 걸립을 할 때, 화를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기를 비는 사설이 여러 군데 들어간다. 이 중 짧고 간단한 것을 지신풀이라고 하며, 마지막 대청마루에 차려놓은 고사상 앞에서 하는 소리를 보통 고사소리 또는 비나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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