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배우면 자연은
신기할 만큼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새소리가 다르다는 것도 들리고
조팝나무 꽃이 피면 모내기를 할 때가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 이은경 교수
충북대학교 기초교육원
2005년 봄 언저리였던가. 제자로 만나 친구가 된 그녀가 상기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외로움을 잘 타는 내게 평생의 친구를 소개해 주러 왔다 했다. 그녀가 내게 소개해준 그 보물은 ‘자연’이었다. 그녀의 끝없는 수다를 들으며 교문까지 배웅해 주는데,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며 내게 첫 번째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순수하고 눈부신 내 첫 번째 친구, 파란색의 ‘개불알꽃’이었다. 늘 걷던 교정이었건만 단 한 번도 내 눈에 띄지 않았던 그 작은 꽃이 그 후론 어느 곳에 가든 보이기 시작했다. 정호승 시인도 그의 시에서 ‘바둑이는 좋겠다. 불알에도 꽃이 피니까’라고 익살스럽게 표현한 바 있는 개불알꽃은 작은 열매가 양쪽으로 매달려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나의 수다쟁이 친구는 만날 때마다 새로운 친구를 소개해 줬다.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소개만 받던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선 지 근 10년이 되어간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자연 친구들에게 배운 것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하나, ‘아는 만큼 보인다.’ 일본의 늦깎이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키에는 그의 저서 <학문의 즐거움>에서 ‘창조하려면 먼저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연과 가까워지기 위해 무조건 다가가는 것도 좋지만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름도 좋고, 별명도 좋고, 평상시에는 못 보는 것들을 안내받아도 좋다. 우선 열심히 배우면 자연은 신기할 만큼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새소리가 다르다는 것도 들리고, 조팝나무 꽃이 피면 모내기를 할 때가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맹꽁이가 울어대면 울음주머니 불룩하게 내밀며 절박하게 짝짓기를 원하는 수컷의 마음도 읽게 된다.
둘, ‘가슴 찡한 모성애’이다. 작년 유난히도 춥던 겨울, 무봉산 돌덩이 밑에서 좀사마귀 알집을 보았다. 어미 좀사마귀는 천적을 피해 손가락도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틈으로 들어가 알을 낳았다. 어미는 그 좁고 어두운 곳에 그러나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한 곳에 알을 낳았다. 그리고는 긴 겨울을 잘 견디기를 바라며 죽어갔을 것이다.
셋, ‘부지런한 부모와 게으른 부모의 모습’이다. 진위면 동천리는 평택의 ‘조수보호구역’이다. 따뜻한 봄이 되면 황새목 왜가리과에 속하는 새들이 동천리를 찾는다. 제일 부지런한 왜가리는 제일 높고 잘 보이는 곳에 둥지를 튼다. 다음은 중대백로나 쇠백로가 천적으로부터 안전한 곳을 찾아 알을 낳는다. 그러나 가장 게으른 해오라기는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불안하고 튼튼하지 못한 곳에 알을 낳아 해오라기 새끼들이 떨어져 죽는 일이 많다. 우리의 부모님은 너무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나는 어떤 부모인가 생각하게 한다.
넷, ‘지혜롭게 사는 법’이다. 벚꽃이 눈처럼 날리고 나면 초록의 잎사귀가 무성해지는데 잎을 잘 관찰해 보면 밀샘을 보게 될 것이다. 잎자루 근처에 혹처럼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혀를 갖다 대보면 꿀처럼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밀샘은 벚나무가 개미를 부르는 수단이다. 개미는 달콤한 꿀맛을 따라 벚나무에 오르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다른 벌레를 잡아먹는다. 벚나무는 그렇게 목욕을 한다. 피톤치트는 인체에는 무해하지만 다른 동식물에게는 유해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소나무가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 된다. 자연은 그렇게 지혜롭게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다섯, ‘숨은 그림 찾는 재미’이다. 자연은 여러 가지 모양을 품고 있다. 그 중 당연 눈에 띄는 것은 사랑의 상징인 하트모양일 것이다. 에사키뿔노린재 등은 물론이고 잠자리 짝짓기 모습, 풍선덩굴씨앗, 냉이꽃 열매, 가죽나무의 잎이 떨어진 뒤에 줄기에 남는 흔적인 엽흔, 마 열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롯이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겨울이 되면 칡덩굴의 엽흔을 살펴보라. 인간의 천태만상이 나타난다. 찡그리는 모습, 천진난만한 아이의 미소는 물론이고 고뇌하는 노인의 주름진 얼굴도 볼 수 있다.
아직 반도 정리 못했는데 내게 주어진 지면을 다 쓰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자연이 내게 준 것이 이렇게 많았다는 뜻이다. 올해는 또 어떤 것들을 배우게 될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그들에게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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