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지을 땐 심사숙고해야 한다.
특히 지명은 장소성·상징성 말고도
고착되면 고치기가 힘들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국제라는 명칭은 미군을 겨냥한 것이지만
그 시장에 미군이 찾아오는 것을
거의 본 일이 없다.
미군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 이수연
한국사진작가협회
前 부이사장

이름을 뜻하는 한자 명(名)은 저녁 석(夕)과 입 구(口)를 합친 글자다. 이는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면 사람을 구분할 수 없기에 내가 누구인지, 상대가 누구인지 구별하기 위해 소리를 내어 확인하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 ‘무엇이라고 일컫는다’는 의미의 칭(稱)이 붙으면 조금 더 폭이 넓어져 사물이나 장소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성격이 된다.

1995년 도농(都農) 복합의 통합 평택시가 출범한 직후의 일이다. 송탄시 명칭이 도로표지판에서 일제히 사라지고 시청도 출장소로 이름을 바꿔 단 직후 그 출장소 횡단보도 앞에서 ‘송탄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합니까?’하는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어느 날, 서울서 평택의 어느 행사를 찾아 왔다는 방문객이 평택(남부)문예회관이라고 누가 알려줬다며 북부(송탄)문예회관으로 왔다. “평택에는 북부·남부·서부 등 문예회관이 세 곳이나 되는데 어느 문예회관이냐”고 되물으니 “무슨 문예회관이 그리 많으냐”면서 “그냥 ‘송탄’ ‘평택’ ‘안중’이라고 부르면 될 걸…” 하고 갔다. 사라진 ‘송탄’ 표지판은 한참 뒤에 송탄출장소 혹은 송탄관광특구 등으로 대체했으나 만 20년이 흐른 지금도 평택은 뚜렷하게 ‘평택지역’ ‘송탄지역’ ‘안중지역’ 으로 나뉜 채 인식되고 있다.

행정적 차원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겠지만 지역 정서나 현실에 맞게 이름 붙이는 게 그리 어려운 걸까 하는 안타까움이 많다. ‘평택 국제중앙시장’이 그 한 예이다. 일반 시민들은 기연가미연가(其然-未然-) 한다. 평택(남부)지역에 그런 시장이 있나? 중앙이라는 이름이면 제일 큰 시장 아닌가? 국제는 또 뭐지? 하는 식이다.

‘평택 국제중앙시장’은 ‘송탄 중앙시장’으로 오랫동안 불러왔다. 하지만 ‘평택 국제중앙시장 문화관광형 시장육성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예산을 따낼 때 행정지명이 들어가야 한다는 이유로 송탄을 삭제하고 평택을 붙였다. 졸지에 송탄의 중앙시장이 평택 전역의 중앙시장이 된 것이다. 시장 불황의 문제가 명칭 때문이 아니잖은가. 송탄의 외곽 개발로 공동화(空洞化)한 이 지역 시장 활성화의 본질은 유입인구를 늘리는 것뿐이다. 외부 기획단의 제안과 인력이 주축이 된 이 시장육성사업단은 그들이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주둔 미군을 타깃으로 삼은 것 같다. 그렇기에 예산만 따온다면 고유명칭 쯤은 쉽게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무리 정부 예산을 따온다 해도 송탄(지역)과 평택(지역)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구분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방문객들이 평택역 앞에 가서 ‘국제중앙시장이 어디예요?’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이름을 지을 때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특히 지명은 장소성과 상징성 말고도 한 번 고착하면 고치기가 아주 힘들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국제라는 명칭은 주둔미군을 겨냥한 것이지만 그 시장에 미군이 찾아오는 것을 거의 본 일이 없다. 미군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관광형’ 시장도 우리의 삶 자체가 외국인들에게는 관광이고 문화가 될 수 있겠지만 외국인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름뿐일 것이다. 그렇다고 외부의 내국인들을 끌어 모을 만한 것도 뾰족한 게 없다.

장기불황으로 문 닫는 점포가 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당국의 노력이 고맙기는 해도 상인들의 어필로 시장 육성사업단은 ‘헬로마켓’이라는 별칭을 생각해 냈고 상인들도 이를 더 좋아한다는 후문이고 보면 시장 명칭이 꼭 잘 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평택 송북시장’이 가능하다면 ‘평택 송탄시장’도 가능한 법이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공무원의 인식 속에 ‘송탄’이라는 이름이 언터처블(Untouchable)처럼 꽉 박혀 있는 것은 아닐까? 전통적으로 사용해 오던 이름만 잃어버린 시장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행정지명보다 사람 끌어 모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평택 국제중앙시장’은 이름보다 ‘사람’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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