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3월 2일

정기총회·설립 기념식 안건으로 처리
준비위원 이수안·이순만·이일성·길팔복

 

 
“衡平社 平澤支部에서는 第七回 委員會를 지난 二日에 本會舘 內에서 李壽安氏 開會辭를 비롯하여 左와 如히 討議한 後 同十一時頃에 無事히 閉會하였다더라. ◇討議案 一, 本支部定總及記念式 開催의 件 一, 本支部 維持이 件 一, 各地方 紛爭事의 件 一, 一切 差別의 件 一, 獸肉販賣組合 創立의 件(保留) 一, 支部會館 問題의 件(保留) 一, 其他 ◇定總과 記念式 準備委員 李壽安 李順萬 李日成 吉八福 李日萬 ◇稷山事件 調査委員 金芝英 李壽安 李日成”(조선일보, 1929년 3월 6일자)

요즘 한국 사회는 ‘갑질’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 사회는 갑·을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갑을 관계가 사회 표면으로 드러나면서 새롭게 이슈화 된 것 이다.

이러한 갑·을 관계는 전근대 성리학적 신분 차별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한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다. 수평관계보다는 수직 내지 상하관계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성숙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갈등 국면에 이르면 가장 먼저 하는 말 중의 하나가 “너 몇 살이냐”라는 말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하 연배로 억누르고자 하는 것이다.

전근대의 신분 갑·을 관계는 일제강점기에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백정白丁’이다. 원래 백정이란 백성을 의미하는 것인데 조선시대 가축을 잡는 천민 신분이 됐다. 근대라는 사회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도 백정은 여전히 사회로부터 소외됐고 차별을 받았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1920년대 백정들의 신분차별을 없애기 위해 설립된 형평사는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두었는데 평택지역에는 평택과 서정리에 각각 지부를 두었다. 평택지부는 1928년 4월 1일 조직됐다. 1929년 3월 2일 개최된 제7회 위원회에서는 6개의 안건을 토의했다. 회의 내용은 정기총회와 설립 1주년 기념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평택지부의 유지방안, 각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형평사와의 분쟁, 백정에 대한 사회적 갑질, 정육판매조합 설립 등이었다. 회의 결과 정육판매조합을 창립하는 것은 사정상 유보됐다.

평택지부에서 활동한 인물로는 이수안·이순만·이일성·길팔복·김지영 등이었는데 핵심인물은 이수안이었다. 회의에서 개회사를 했다는 것은 지부장이었다고 보인다. 이수안은 지부 설립 후 1928년 7월 22일 개최한 임시총회에서 교양부장을 맡은 바 있으며 1932년 4월 23일 형평사전체대회에서 임시의장을 맡아 회의를 진행하고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는 평택지회의 활동과 위상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해방 후 이수안은 좌익계열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1948년 미소공동위원회 개최를 반대하였다는 8.15폭동 사건에 연루돼 1년의 형을 받은 바 있다. 이일성은 7월 22일 임시총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