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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평택, 사람 65 - 사람이 그리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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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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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 속에서 고통 받는 우리 이웃들


아무리 미군 위안부들이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그들은 역사의 희생자들입니다.
게다가 평택과 송탄지역에 자리한
미군부대의 규모를 생각하면
평택지역 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시급한 문제입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그리고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으로 인해 일본 천황은 항복을 발표했고 기나긴 태평양전쟁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전쟁은 끝이 났지만 그 피해는 엄청나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죽은 사람이 23만여 명 그리고 부상자까지 합치면 70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일본에 살고 있던 한국인들 피해도 커서 히로시마에서만 5만 명이 피해를 입은 가운데 3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나가사키에서는 피해 2만 명에 1만 명 정도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한국인 피해자 가운데 2만 5000명이 귀국을 했는데 원폭피해 후유증으로 인해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할 만큼 힘들었지만 보상은커녕 치료조차 받지 못하며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일본인 피해자나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 한국인들은 일본정부에서 제공되는 각종 혜택을 받은 것과 달리 제나라 국민이 입은 피해상황조차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도 못하고 있는 이 나라 정치인들 탓에 원폭피해자들은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평택읍 비전리 충혼산에서 합정동으로 내려오는 언덕길 골목 안에는 ‘원폭피해자협회 평택지부’가 있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가정집 출입문에 붙은 간판이 있어 ‘아! 이 집에 사시는 분이 원폭피해자이신가보다’ 그리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관심조차 갖지 않는 일. 그래서 이웃에게서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잘못 알려지면 원폭피해가 마치 전염병이라도 되는 양 모르는 사람들은 기피할 수 있기에 ‘내가 원폭피해자다’라며 선뜻 나서지도 못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지요.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평택지부, 그 때가 1970년대였으니 아마도 그 집에 사시던 원폭피해자 분은 이미 돌아가셨는지도 모릅니다.

정확하지 않은 통계지만 우리나라로 돌아온 원폭피해자 가운데 약 10% 되는 분들이 현재까지 생존해 계신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피해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원폭 피해를 입은 분들의 원통함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보다 더 한스러운 일은 아무 잘못도 없는 2세나 3세들이 겪어야 하는 후유증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원폭피해 1세대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치료와 후손들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평택에 살고 있는 50만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고 있는 우리 이웃에 원폭피해자가 겪는 억울함이 대를 잇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해방 70년,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어느 날엔가는 평생 치욕적인 고통과 멍에를 안고 온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는 비극적인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군 위안부 못지않게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바로 미군 위안부, 기지촌 여성에 관한 대책입니다.

1950~60년대 단돈 1달러가 소중하던 시절 기지촌 여성을 통해서 흘러들어오는 외화는 나라 경제를 일으키는 일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기에 많은 정치인들은 미군 위안부들을 미국 달러를 벌어들이는 산업역군으로 떠받들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위안부들의 실상은 비참하고 참혹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너무도 힘겨워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의정부·파주·송탄·평택 등…

미군부대가 있는 도시의 기지촌으로 흘러온 여성들은 미군들로부터 인간대접도 받지 못한 채 갖은 폭력과 학대를 견디지 못해 결국 목숨을 끊기도 했고 미군과 결혼생활을 통해 얻은 아이들을 기를 능력이 없어 두 눈 뻔히 뜨고 아이들을 빼앗기거나 국내 입양기관을 통해 낯모르는 타국 땅으로 아이들을 보내며 언제 다시 만날 지도 모른 채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해방과 6·25한국전쟁을 지나며 남북 분단이 되고 미군들이 이 땅에 들어서면서 미군 위안부가 필요했기에 미군부대 주변에 기지촌이 만들어진 것이고 위안부 일은 어느 누구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만일 미군 위안부가 없었다면 수많은 여인들이 하루아침에 무참히 성폭력을 당했을는지도 모를 일이었지요. 그러고 보면 미군 위안부는 우리 가정을 지켜주고 우리 딸자식을 지켜준 감사한 이웃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런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미군 위안부를 죄인취급하거나 홀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미군 위안부들이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그들은 역사의 희생자들입니다. 게다가 평택과 송탄지역에 자리한 미군부대의 규모를 생각하면 평택지역 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시급한 문제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오히려 외면을 하는 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햇살사회복지관을 만들어 10년이 넘게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우순덕 선생의 값진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평택시와 평택시의회, 경기도는 한시바삐 기지촌 여성에 대한 복지문제와 돌아갈 곳조차 없는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노후를 위한 회관건립 등 현안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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