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속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위한 진혼곡대중에게 전하는 시대적 메시지가 전위예술 전위예술은 예술가가 대중에게 전하는 예술의 또 다른 방식이다. 예술가 안에 내재된 수많은 질료들을 전위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대중 앞에 선보이는 것으로 도중에 그만두거나 재생도 없이 그 순간을 향유하며 오로지 앞을 향해 전진한다는 예술적 특성이 있다. 때문에 행위 도중 예술가 안
서해안 길고 긴 해안선에 잇대어 있는 경기도·충청도·전라도 그리고 수많은 섬 지역 어디에서나 해지는 저녁노을을 볼 수 있기는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고장에서는 서해바다로 지는 저녁노을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해서 축제를 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택노을만큼 장엄한 노을을 아직 만나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동요 ‘노을’은 평택의 상징입니다.1984년
경비일 하며 새벽마다 엮은 삶의 성찰이 나의 詩‘시’로 다 말하지 못한 재능, 음악적 ‘끼’로 표출 “폐교된 학교 교실 같은 을씨년스런 거실에서/ 육십 늙은이와 세 살짜리 백순이란 똥개가 논다/ (중략) / 개와 동무되어 나도 개가 되어 짖는다/ 살아있음을 확인하려고 멍멍대며 논다땅바닥에 시 쓴 젊은 무명시인“20대 초반에 머슴의 딸을 흠모한 적이 있어요.
내가 다니는 회사는 통신시스템 회사다. 남한에서 내 직장을 갖고 일을 해본 경험이 없는 나는 아는 분의 소개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처음 사장님과의 면접을 보기 위해 갈 때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도전해보는 시험무대였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초조했다. ‘무슨 질문을 하실까?’ ‘말을 더듬거리면 어떡하지?’ 자꾸 이런 생각만 머릿속을
브랜드 패션디자이너, 늦깎이 간호사로 첫 발엄마 죽음 지켜보며 호스피스병동 간호사 꿈꿔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한두 번 쯤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와 만나게 된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삶들과 결별하고 낯선 삶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어제보다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과감하게 이전 삶에 안녕을 고하고 인생의 새로운 신화
지난 10월 초 평택 원평동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올 가을에도 제2회 ‘원평나루 억새·노을축제’를 하게 되었으니 행사에 참석해주면 고맙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원평동의 본디 지명地名은 군문동도 아니고 워낙이는 ‘군문리’ 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의 정서란 것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격인 짜장면을 ‘짜장면’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나
사람 사는 향기와 멋 아는 포승읍 토박이사진·오카리나 재능봉사, 언제든 달려가 사람마다 살아가는 모습은 참 다양하다. 그러나 나이와 상관없이 그가 현재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꾸려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 현재 그가 살아가는 모습은 아직 가보지 않은 불투명한 미래에 그 사람이 살아가게 될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24시간도 부족한 제2의 인생“
1984년 5월 5일 어린이날.서울 리틀엔젤스회관에서 열린 MBC 문화방송 ‘제2회 창작동요제’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동요 ‘노을’이 아이들 입에서 입으로 불리기 시작한지 햇수로 꼭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년 2014년은 동요 ‘노을’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동요 ‘노을’ 열풍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아직 채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은 5월 초 이제 막
우리나라 최초, 단 한명 여자 MTB 국가대표선수반파된 자전거 타고 1등으로 들어온 고집과 뚝심 운동선수로서 한 분야의 최고가 된다는 것은 육체적인 노력과 집념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에는 반드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하는 정신적인 굳건함이 내재돼 있어야 한다. 인간으로서 부딪히게 되는 수많은 좌절과 절망의 벽, 그것을 뛰어넘고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
남한에 온지도 어느덧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처음 남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차라리 바보 같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너무도 여린 소녀였다. 북한에서는 국가에서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지어주기 때문에 주민들은 잘되든 못되든 국가의 지시에 운명을 맡기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순종이라는
세상 벽 맞서 싸우던 삶, 이제 내가 보듬어장애 있어도 내가 가진 또 다른 재능은 있어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정상적인 육체를 가진 사람들도 해내기 어려운 일들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은 대체 어떻게 헤아려야 하나. 그 이면에는 얼마나 피나는 훈련과 고뇌와 인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일까.최초 철인3종 6대륙 횡단
홍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던 박승남 선생은 한 학기를 마치고서 가정형편상 더는 학교엘 다니지 못했습니다. 동화작가이자 교사였던 伯氏 박승일 선생도 또 소설가며 당시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였던 백부伯父 박영준도 박승남 선생이 학업을 계속하는 일에는 아무 도움이 되질 못했습니다.그래서 박승남 선생은 이일 저일 손에 닿는 대로 시간을 보내다 군복무를 마치고서는 일
암 수술 일주일 후 미용장 시험 봐 합격병은 힘든 일을 쉬라는 ‘하나님의 뜻’ 심리학자 칼 융은 ‘우울은 신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라고 했다. 그 말의 뜻은 혼자 있는 시간이라야 자신의 내면을 가장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조금만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민주당과 평소 실천해온 의정활동 방향 같아 선택”“공천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약자의 입장에 설 것”2012년 10월 25일 “통합진보당이 공당으로서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을 보여 국민들을 실망시켰다”며 통합진보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활동했던 김기성 평택시의회 의원이 탈당 1년만인 10월 7일 민주당에 입당했다. 평소 소신있는 의정활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북한에서 자동차 부문에 종사한 경력을 바탕으로 한국에 들어와 처음으로 버스회사의 정비사로 취업했다. 동료 직원과 함께 20여대의 차를 담당했다. 별다른 기술은 필요하지 않았지만 힘든 육체노동이 따랐다. 하지만 노동보다 더 나를 괴롭힌 것은 정비 용어들로 북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외래어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떤 날은 차량부품의 이름을 잘 못 알아
축구로 몸 만든 후 육상으로 다시 입문해꿈 향해 도전하는 일상, 하루하루 즐거워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전진하다보면 어느 날 문득 부쩍 성장해버린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인생의 최종 종착지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목표와 만나고 그 지점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道생활체육대축전 육상 2관왕“이번 경기도생활체육대축전에 육상 40대부로 출전해서
1980년, 김장철이 지나고 겨울방학이 가까워 온 어느 날 평택성동초등학교 6학년 교실.옆자리에 앉은 무남이가 자기 집에 가면 식혜가 한 독 가득 있다고 했습니다.- 엉! 식혜가 한 독씩이나!!!놀라운 일입니다. 명절이나 되어야 어쩌다가 한 사발 먹을 수 있는 식혜, 단술이 한 독씩이나 있다니 믿을 수 없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서 학교 공부가 파하기를 기다
두 번의 부도, 모든 걸 잃고 평택에 정착한 송이 꽃에도 눈길, 사람과 만남 행복 세상의 많은 부부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긴 시간을 함께 살아가다보면 때론 울고 싶어지는 순간들과도 마주하게 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나를 믿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내편’이 ‘내 가까이’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다.
김정일… 자기 백성들의 실태를 독재체제 유지 등 정치적 이용물로 활용한 이 현실 앞에서 더 냉정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우리 탈북자들입니다. 인민들은 굶어죽어도 김정일 독재정권의 체면만 살리면 된다는 비 인도주의적 행태에 격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김정일의 독재정권은 하루빨리 무너뜨려야 하며 온 세계에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 인
여성도 능력 있어야 한다는 것 살며 깨달아이젠 초등학교에서 일본어 강사 활동하고파 요즘은 예전과 달리 여성들도 사회 속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능력들을 가져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남성들을 능가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이기도 하다. 남성과 여성의 직업에 구별이 없어지면서 예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영역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여성들도